[박근혜정부 2년] 신뢰 못 주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입력 2015-02-24 02:52
“2년 동안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얼마나 진전됐느냐 묻는다면 알다시피 크게 진전이 안 됐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최근 강연에서 한 말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박근혜정부의 핵심 대북정책인 점을 고려할 때 주무부처 수장이 사실상 실패를 인정한 셈이다. 통일부에서는 체념의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한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측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추가로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명박정부 들어 냉각됐던 남북관계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에도 좀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직된 북한 태도가 원인이라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좀처럼 유연한 자세를 보이지 않는 우리 정부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불신’만 낳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박근혜 대통령이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던 2011년 해외 학술지에 기고한 글에서 처음 제시됐다. 박 대통령은 남북 화해를 저해하는 근본 요인을 신뢰의 결여로 진단하면서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해 통일 기반을 구축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은 낙제점을 면키 어렵다.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부원장은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신뢰프로세스는 김대중·노무현정부의 ‘햇볕정책’과 이명박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달리 중도적 입장을 취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부분이 있다”면서도 “다만 의도는 좋았으나 성과가 없었다. 남남 갈등이 비교적 적은 호기를 맞았음에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진향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신뢰프로세스 근간에 북한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신뢰프로세스에 신뢰가 없다’거나 ‘신뢰프로세스가 아닌 불신프로세스’란 부정적 평가가 상당하다”며 “똑같은 대화 제의라도 북쪽의 그것은 간단하게 ‘진정성 없는 대화 공세’로 규정해버리고, ‘대화를 위한 대화는 없다’는 식으로 부정한다”고 했다.

◇공허한 ‘통일대박론’…‘흡수통일론’ 논란에 안보 불안만 가중=박 대통령이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통일대박론’에 대해 학계에선 국내 정치용 수사학이라는 비판을 내놓는다. 구체적인 통일 방법론과 비전도 없이 막연히 ‘통일이 되면 경제적으로 좋아진다’는 주장만 내세웠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에 극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는 것도 ‘흡수통일론’의 논리와 유사한 측면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는 통일대박론을 통해 통일의 당위성을 알리고 국민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려 했지만 이마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발표한 ‘2014 통일 의식조사’를 보면 통일대박론에 ‘공감한다’는 응답은 31.4%에 그쳤다. 반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묻는 ‘안보불안의식’은 전년도보다 10% 포인트 가까이 상승한 74.9%를 기록해 2011년 이후 처음으로 반등했다. 북한 핵무기에 대한 불안감 또한 89.3%로 2007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높았다. 북한 정권과 대화·타협이 가능하다고 보는 ‘대북 신뢰도’는 27.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남북 간 신뢰를 쌓지 못하고 도리어 안보불안만 가중된 모양새다.

◇경색된 남북관계 돌파구는=전문가들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신뢰를 말하고는 있지만 정작 그 신뢰가 쌓이지 않고 있다”며 “남측은 경제 분야에서의 신뢰를 말하는 반면 북측은 군사력이나 정권 차원의 자존심을 중시한다. 각자 우선순위가 다르니 ‘정권붕괴’나 ‘흡수통일’ 등 오해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보고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상회담이 난관이 많지만 반드시 실익은 있다”면서 “대통령의 결단과 정치적 리더십으로 추진 여부를 결정하고 여러 전제조건을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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