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주류’ 1세대 씨 뿌리고 2세대 잘 키웠다… 힙합, 어떻게 성장했나

입력 2015-02-25 02:53
힙합이 가요계의 주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부터 힙합 가수들이 내놓은 음원은 온라인 차트 상위권을 장악해 오고 있다. 아래 왼쪽부터 디지털싱글 ‘그냥(Just)’을 발표한 자이언티, 크러쉬와 힙합계 거장이 된 리쌍의 개리와 길, 다이나믹듀오의 개코, 최자.각 소속사 제공

쉽게 달궈졌다가 쉽게 식는 양은냄비와 달리 은근히 달아올라 열기를 이어가는 가마솥 같다. 비주류 장르에서 어느새 대세로 떠오른 힙합 얘기다. 가요 기획사들은 힙합 가수들의 앨범 발매일을 신경 쓰기 시작했고, 동료 가수들은 “힙합 가수가 가장 부럽다”는 말을 하고 있다.

지난해 가요계에 열풍을 몰고 온 힙합의 인기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고 있다.

가요계 관계자는 24일 “힙합이 어느새 가요계의 중심이 됐다”면서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대중들에게 파고들면서 저변을 확대해 나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래퍼 자이언티와 크러쉬가 내놓은 ‘그냥(Just)’은 지난 2일 음원을 공개하자마자 음원 차트 정상에 올랐고 현재까지도 5위 안에 안착해 있다. 지난달 9일 래퍼 매드클라운이 발표한 ‘화(Fire)’도 대다수 음원사이트 10위권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에도 에픽하이, 다이나믹듀오의 개코, 매드클라운 등이 음원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다 보니 일부 기획사들은 다이나믹듀오, 리쌍 등 대형 힙합 가수들의 음원 발매일은 피하자는 원칙 아닌 원칙까지 만들었다.

가요계에선 이 같은 현상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평가한다. 힙합이 차근히 단계를 거치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힙합 1세대로 불리는 듀오 듀스, 윤미래 등은 1990년대 후반 힙합이 한국에 들어온 뒤 끊임없이 대중들에게 이 음악을 알렸다. 듀스는 힙합이라는 생소한 장르로 팬덤을 형성했고 윤미래는 여성 힙합 가수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가능성의 길을 열어줬다. 윤미래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엔젤(Angel)’도 음원 차트 상위권 자리를 장기간 지켰다. 그녀의 남편인 타이거JK도 래퍼 DJ샤인과 힙합 듀오 드렁큰 타이거를 결성해 대중화를 이끌었다. 윤미래와 타이거JK는 지난해 11월 래퍼 비지와 함께 음악 레이블 ‘필굿뮤직’을 설립하기도 했다.

1세대 힙합 가수들이 다져놓은 기반 위에 2세대 힙합 가수로 꼽히는 다이나믹듀오, 에픽하이, 리쌍, 빈지노, 로꼬, 스윙스 등 인디 힙합 가수들이 각자의 색깔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씨스타의 소유, 인피니트의 유닛인 인피니트H 등 아이돌 그룹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방송 매체도 기여했다. 케이블 채널 Mnet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가수들을 재발견하는 장이 됐다. 같은 채널에서 현재 방송 중인 ‘언프리티 랩스타’는 여성 래퍼들만 참여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바이벌에 참여한 제시, 치타, 강남이 방송에서 선보인 ‘마이 타입(My type)’은 실시간 음원 차트를 석권하기도 했다. 힙합에 도전하는 아이돌 그룹도 생겨났다. 걸그룹 포미닛과 보이그룹 방탄소년단, 블락비 등이 있다.

힙합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면서 힙합 가수들은 홀로 음악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해 개코의 ‘화장 지웠어’와 올해 매드클라운의 신곡 ‘화’, 자이언티와 크러쉬의 ‘그냥’이 대표적이다. 가요계 관계자는 “랩 자체만으로도 홀로 설 수 있는 음악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요계에선 힙합 열기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힙합 가수들이 직접 곡을 만들고 프로듀싱까지 하면서 자기 색깔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면서 “다양성을 추구하고 다른 장르와의 콜라보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힙합은 진화·발전하면서 인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