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출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사진) 감독의 영화 ‘버드맨’이 아카데미 4관왕에 올랐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버드맨’은 작품·감독·각본·촬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최다 부문(9개) 후보에 오른 ‘버드맨’은 슈퍼히어로 버드맨 역할로 톱스타의 인기를 누렸던 할리우드 배우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이 꿈과 명성을 되찾고자 브로드웨이 무대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았다.
멕시코 출신으로는 처음 아카데미를 석권한 이냐리투 감독은 “누군가 이기면 누군가 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과 개인적인 경험, 이런 것들을 다 융합해서 훌륭한 분들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오늘 제가 입고 있는 정장은 마이클 키튼이 입었던 것”이라며 “냄새가 좀 퀴퀴한데 정말 효과가 있었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버드맨’과 함께 최다 부문 후보에 올랐던 웨스 앤더스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미술·의상·분장·음악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역시 ‘버드맨’과 작품상·감독상을 놓고 경합했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는 여우조연상(패트리샤 아퀘트) 수상에 그쳤다.
가장 관심을 모은 여우주연상은 ‘스틸 앨리스’에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여교수 역을 맡은 줄리안 무어가 받았다. 무어의 오스카상 수상은 처음이다. 그는 2000년 ‘애수’와 2003년 ‘파 프롬 헤븐’으로 여우주연상, 1998년 ‘부기나이츠’와 2003년 ‘디 아워스’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지만 트로피를 한 번도 품지 못했다. 무어는 “오스카상을 받으면 수명이 5년 늘어난다는 기사를 읽었다. 남편이 연하라 제가 오래 살아야 하기에 아카데미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면서 “알츠하이머에 대해 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남우주연상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에게 돌아갔다. 레드메인은 호킹 박사의 눈썹 움직임까지 철저히 연구하며 열연을 펼쳤다. 그는 “이 상은 ALS(루게릭병)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환자분에 대한 것”이라며 “호킹 박사의 자녀분들과 영광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남우조연상은 ‘위플래시’에서 최고의 실력자이자 최악의 폭군인 플레처 교수로 열연한 J K 시몬스가 받았다. 외국어영화상은 폴란드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이다’가 수상하고, 장편애니메이션상은 다이엘 헤니가 주인공 목소리를 연기한 디즈니 작품 ‘빅 히어로’가 차지했다. 국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인터스텔라’는 시각효과상 1개 부문 수상에 그쳤다.
사회를 맡은 배우 닐 패트릭 해리스는 ‘버드맨’의 한 장면처럼 팬티 차림으로 등장해 화제를 뿌렸다. 축하 무대도 풍성했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사운드 오브 뮤직’ 50주년을 기념해 헌정공연을 펼쳤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줄리 앤드루스는 음악상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 “벌써 50년이 지났다니 믿을 수 없다. 영화는 관객의 경험을 충만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희귀병 환자 ‘희망의 연기’ 무어·레드메인, 오스카 품었다…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입력 2015-02-24 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