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2년] 경제민주화 지우고 활성화 올인했지만… 머나먼 ‘474’

입력 2015-02-24 02:39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퉁퉁 불어터진 국수’라고 비유하며 경제 활성화법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박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자리가 비어 있다. 이동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2월 취임 후 경제민주화, 창조경제, 민생경제로 우리 경제를 이끌겠다고 천명했다. 이른바 ‘근혜노믹스’가 그려진 것이다. 지난해에는 잠재성장률 4% 회복, 고용률 70% 달성,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474’ 비전을 제시했다. ‘규제개혁’을 골자로 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구체적인 실천전략도 내놓았다. 박 대통령의 취임 2년을 맞은 지금의 모습은 어떨까.



구호에 그친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는 수출 대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중소협력업체들에 공평하게 분배해 내수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재벌그룹에서 총수 일가가 이익을 독차지하는 구조를 바꾸고 경제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일부 업종에는 대기업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는 중소기업적합업종 범위가 확대됐고, 대형 유통업체의 ‘갑질’을 규제하는 가맹사업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 경제활성화에 무게 중심이 실리기 시작했다.

첫 경제사령탑인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각종 규제개혁안을 내놨지만 세월호 참사 악재에 추진이 지지부진했고, 최경환 부총리도 취임 직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침체된 경제 살리기에 주력했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는 서서히 묻혔다.

재벌기업 총수 일가가 불법행위를 저지를 경우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고, 사면권 행사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했지만 관련법은 국회에 잠들어 있다. 지난해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인 ‘규제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대기업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경제민주화는 물론 복지공약을 줄줄이 폐기하거나 축소했다”며 “경제운용의 적절성을 떠나 공약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상실했다는 것이 미래 한국의 정치경제 발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용률 나아지고 있다지만…

박근혜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고령화로 인한 50대 이상 장년층의 고용안정성을 위해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임금피크제도 점차 확대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새로 직장을 찾은 사람은 월평균 54만명을 넘으면서 1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속사정을 보면 그리 좋아할 일이 아니다.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는 줄고 50대 이상 취업자가 크게 늘었다.

지난해 8월 기준 비정규직은 사상 처음 600만명을 넘어서는 등 고용의 질도 뒷걸음질쳤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문제, 노사관계 등 노동자들의 처우나 일자리 문제에 대한 공약 이행이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과다 채무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구제해야 했다. 정부는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6개월 이상, 1억원 이하의 빚을 연체한 채무자 24만9000명의 이자 전액과 원금 일부를 경감해줬다.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이들도 취업 후 갚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23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업무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부채는 64조원 늘어 1090조원 안팎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됐다. 국민 1인당 2150만원의 빚을 진 셈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7년 이후 최고치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대출규제 완화와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대부업을 금융당국이 관리하도록 해 자격 요건이 안 되는 업체의 난립을 막으려 했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에 묶여 있다.

창조경제 분야는 2013년 3월 미래창조과학부를 발족한 뒤 기초연구 부문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중 기초연구 지원 비중은 2012년 35.2%에서 올해 38.8% 수준으로 확대됐다.



서민 중심 부동산 정책도 ‘흔들’

집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공약도 헛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박근혜정부는 당초 보유주택 지분매각 제도,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등을 내세웠지만 이들 정책은 사실상 폐지됐다. 결국 전세난을 잡는 것을 포기하고 손쉽게 월세로 갈아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기업형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월세는 가처분소득을 감소시키는 주범이란 점에서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다보니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아파트에서 다가구·다세대로 몰리는 등 주거환경은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주택정책 기조도 흔들리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초 고소득자도 초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수익공유형 모기지’ 출시 계획을 밝혔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집값 하락이 걱정되는 상황에서 대출조건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집을 사도록 하는 것은 하우스푸어 문제를 부추길 소지가 크다”며 “새로운 모기지 상품도 임대인 혹은 집을 살 수 있는 집 부자만을 위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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