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상태 무단횡단 사고… 고법 “보행자 과실 더 크다”

입력 2015-02-24 02:00
김모(25·여)씨는 2011년 4월 경기도 의정부 도심의 편도 2차로에서 무단횡단하다 박모(26·여)씨의 SUV 차량에 치었다. 밤 11시40분쯤이었고 차는 시속 40㎞로 달리고 있었다. 어두운 도로에서 김씨를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김씨는 당시 만취 상태였다.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사고를 당했는데 술이 깬 뒤에도 사고 사실이나 경위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김씨는 왼쪽 턱뼈 일부와 치아 한 개가 부러졌다. 주기적으로 보철 치료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이마, 콧등, 턱 끝이 함몰됐고 1∼3㎝ 길이의 흉터가 곳곳에 남았다. 성형수술, 레이저 치료 등을 받아도 흉터가 일부 남게 됐다. 이에 김씨는 박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은 김씨와 박씨의 사고 책임이 각각 50%라고 봤다. 술에 취해 무단횡단한 김씨와 제대로 전방 주시를 하지 않은 박씨의 과실이 대등하다는 판단이었다. 박씨는 지금까지 들어간 병원비 및 김씨가 향후 입게 될 경제적 손해 등에 위자료 840만원을 더해 모두 4300여만원을 배상하게 됐다.

하지만 2심은 보행자 김씨의 과실이 운전자 과실보다 더 크다고 보고 배상액을 낮췄다. 서울고법 민사17부(부장판사 이창형)는 “박씨가 김씨에게 317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운전자의 손해배상 책임은 40%로 제한됐다. 운전자가 물어야 할 위자료도 500만원으로 낮아졌다. 재판부는 “박씨에게 사고를 일으킨 책임이 있지만, 김씨도 사고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상태에서 보행자 정지신호에 길을 건넌 과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