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상민(51)씨는 ‘청바지 아가씨’ ‘무기여 잘 있거라’ ‘멀어져간 사람아’ 등의 히트곡을 남긴 가요계의 ‘8090’ 대표 주자 중 한 명이다. 지금도 중절모와 검은 선글라스, 턱수염을 고집하는 그는 다소 터프한 ‘괴짜’처럼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현실의 삶은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기부와 봉사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어떤 일간신문의 인터뷰 기사 제목은 ‘딱한 사연에 울컥…40억 충동 기부했죠’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이런 박씨가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파렴치한’으로 몰리자 언론중재위원회에 갔다. 일부 표현만 달리했지 ‘파렴치한’ 내용의 동일한 기사에 제목을 자극적으로 달아 반복적으로 온라인에 전송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어뷰징) 때문이었다.
10분당 1건 어뷰징… 기자 이름도 없어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로드FC’ 대회에서 이둘희 선수가 일본의 후쿠다 리키 선수에게 낭심을 두 차례 가격당해 쓰러졌고 결국 경기는 무효 처리됐다. 박씨는 로드FC의 부대표다.
하지만 이보다 세간에 더 관심을 끈 건 다음날 한 온라인 매체가 포털에 전송한 “로드FC 이둘희, 상황 보니…박상민 ‘일어나 XX!!!’ 논란”이란 기사였다. 이 기사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둘희 선수 인간 이하의 대우를 당했다’는 제목의 글을 근거로 작성된 것이었다. 게시자는 박씨가 “선수를 마치 동물원 원숭이 대하듯” 욕설과 폭언으로 막 대했다고 주장했다. 네이버 검색 결과 ‘박상민 욕설’ 관련 후속기사들이 180여건이나 쏟아졌고 포털 인기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를 보도한 매체들 가운데 박씨 측은 H매체에 특별히 주목했다. 타 매체의 첫 보도 이후 4시간 후에야 1보(報)를 내보낸 H매체는 2시간17분 동안 자사 홈피와 네이버·다음 등 포털에 13건의 동일(유사)한 기사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박씨의 법률대리인 최영기 변호사는 언론중재위에 제출한 신청서에서 ①불과 2시간여 만에 총 13회(약 10분마다 1건 꼴)에 걸쳐 작성한 점, ②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을 확인할 수 없는 점, ③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한 점 등을 들어 “(뭔가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한 것”이라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결국 H매체는 언론중재위의 조정에 따라 지난 1월 7일 “해당 경기 중계영상 등을 확인한 결과 박상민 부대표는 이둘희 선수에게 욕설이나 폭언을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어 이를 바로잡습니다”라는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최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당 언론사에 누가 악의적 기사를 작성해 반복 전송했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되레 ‘가만 안 있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들었다”며 “박상민 부대표가 10년 이상 종합격투기에 헌신해왔는데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려 바로잡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뷰징 기사들엔 정정보도도 건별로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언론중재위가 조정한 정정보도문을 어뷰징한 모든 기사 하단에 각각 첨부한 점과 양측이 다투는 과정에서 기사실명제가 쟁점으로 부각됐다는 점이다. 아직 섣부르긴 하지만 두 가지 점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온라인 뉴스 생태계의 고질병인 어뷰징을 억제 또는 척결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조회수를 노린 어뷰징 기사들의 대부분이 바이라인(기자 실명)이 없는 게 실상이고 이런 기사들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면 언론사에 건별로 ‘부담’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씨 측이 정정보도만 청구하고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않은 건 실종된 온라인 저널리즘의 복원이란 차원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경제적 부담(손해배상)을 주는 선례가 자주 나와 준다면 작금과 같은 어뷰징 남발이 심각할까 하고 한번만 곱씹어봤어도.
정재호 편집국 부국장 jhjung@kmib.co.kr
[돋을새김-정재호] 언론중재委로 간 어뷰징
입력 2015-02-24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