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각장애인 최초로 미국 재활상담사 자격증을 따고 텍사스 주정부 재활상담사로 활동했던 서원선(38·평촌진리사랑교회) 박사. 그는 요즘 새로운 의욕과 기대에 차 있다. 오는 3월부터 경기도 용인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대학원(웨신) 글로벌재활상담과정 특임교수로 임명돼 강단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
미 텍사스 오스틴대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미시간대에서 박사(재활상담학) 학위를 받은 그는 주정부 재활상담사로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강단에 서기까지 긴 시련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서 박사는 중도실명자다. 7세 때 앓은 홍역으로 시력이 약해진 후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시신경 위축’으로 빛을 잃었다. 2남 중 둘째인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했다. 이때부터 어머니는 서 박사가 단국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2003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까지 매일 옆에서 보살펴 주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잊을 수 없어요. 제가 맹학교를 가지 않고 일반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입니다. 어머니가 교과서를 읽어주고 노트도 정리해 주시고 수업 내용까지 녹음해 복습하게 하셨지요.”
서 박사가 미국으로 유학 간 후 어머니는 암 진단을 받았으나 아들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 숨기다 임종 직전에야 알렸다. 어머니의 나이 50세,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붙잡고 서 박사는 울고 또 울었다. 장례를 마치고 미국에 돌아왔지만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했다. 늘 전화로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은 공부에 있어 장애인이라고 봐주는 게 없었다. 강의를 녹음해 다시 듣고 참고서적을 읽고 리포트를 쓰는 일은 비장애인의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외로움과도 싸워야 했고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처리해야 했다. 계속되는 어려움에 그냥 주저앉고 싶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려 짐을 몇 번이나 싸기도 했다.
“이런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신앙입니다. 현지 한인교회 교인들이 돌아가며 저의 통학을 도와주고 반찬도 만들어주는 등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어요. 또 병까지 숨기며 격려해준 어머니를 떠올리면 다시 주먹이 불끈 쥐어지곤 했어요.”
서 박사는 ‘장애인 재활’을 공부하도록 인도하신 것은 아직 음지에 있는 많은 장애인의 사회 진출을 도우라는 사명으로 인식, 안정된 미국 직장을 뒤로하고 2010년 귀국을 결심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무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4년간 직장을 찾아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으나 시각장애인은 학생을 가르칠 수도, 업무도 보기 힘들다는 것이 모두의 선입견이었다.
“8년간 미국에서 공부하고 경력을 쌓은 것이 한국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 순간 차라리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이런 저를 나사렛대 부총장인 김종인 박사님이 재활복지전문인력양성센터에서 일하도록 주선해 주셨지요. 이것이 발판이 되어 이제 대학 강단에 서게 됐으니 제 꿈이 반쯤 이뤄진 셈입니다.”
한국의 어느 곳도 그를 받아주지 않아 방황할 때 서 박사를 소리 없이 도와준 천사 같은 자매가 있었다. 교회서 만난 방과후 교사 길은영(31)씨였다. 두 사람은 지난해 결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올해 제가 아버지가 됩니다. 더구나 제가 그토록 염원하던 강단에서 가르칠 수 있게 돼 감사의 조건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은 시력은 안 주셨지만 대신 청각과 후각, 영감을 발달시켜 주셨습니다. 장애는 고난이 아니라 이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난 서 박사는 웨신에 신설된 ‘글로벌재활상담 및 선교석사학위 과정’에서 모두 영어로만 강의할 예정이다. 웨신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지도자들이 와서 ‘재활’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어머니의 헌신과 미주 한인교회 성도들의 사랑, 멘토가 돼준 김종인 박사가 안 계셨으면 자신은 이 자리에 설 수 없었다고 겸손해 하는 서 박사. 그는 “많은 분에게 받은 사랑을 갚는 길은 나처럼 갈 길을 못 찾던 장애인들의 멘토가 되어주는 일일 것”이라며 “앞으로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미션&피플] 시각장애인 서원선 박사 “국내 대학 강단서 장애인 멘토 역할”
입력 2015-02-24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