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저유가’도 못막는 전기차의 질주…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 전기차 개발 경쟁
입력 2015-02-24 02:39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벤즈씨는 지난해 초 닛산의 전기차 리프를 리스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타던 폭스바겐 제타의 주유비를 보고 깜짝 놀란 게 계기가 됐다. 원유 가격이 최고가를 달릴 때였다. 전기료, 충전기 설치비, 리스비 등을 계산했더니 일반 자동차보다 전기차가 더 저렴했다. 최근 유가가 크게 하락했지만 벤즈씨는 전기차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연방정부가 전기차에 대해서 세금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캘리포니아주만 제공하는 세금 혜택도 있기 때문이다. 1회 충전으로 135㎞를 달릴 수 있는 성능도 마음에 든다.
◇저유가에도 ‘잘나가는’ 전기차=일반적으로 유가와 전기차 판매량은 반비례 관계를 갖는다. 주유비가 내려가면 전기차에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즈씨 사례에서 보듯 ‘유가 하락=전기차 위기’라는 공식이 무색해지고 있다. 지난해 중순 이후 유가가 반토막났음에도 전기차 판매량은 증가하고 있으며, 기업들이 전기차 기술 개발에 쉼 없이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전문 매체 ‘인사이드EVs’의 집계에 따르면 순수 전기차(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PHEV) 등 전기차의 미국 내 판매량은 지난달 5924대로 전년 동기(5550대)보다 6.7% 증가했다. 지난해 미국 판매량도 11만9710대로 전년(9만7507)보다 22.8%나 늘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5∼2020년 기간 동안 EV와 PHEV가 연평균 47%의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저유가에도 판매량이 줄지 않자 가능성을 본 기업들은 너도 나도 전기차 개발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대표적 IT 기업인 애플도 전기차 개발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전기 미니밴을 ‘타이탄’이라는 코드명으로 설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유명 벤처 투자가 제이슨 캘러케이니스는 “애플이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를 인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전기차 열풍을 이끌었던 테슬라는 파나소닉과 50억 달러를 합작 투자해 미국 네바다주에 리튬이온 2차전지 배터리 생산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짓고 있다. 아우디의 경우 1회 충전으로 460㎞를 주행할 수 있는 SUV를 개발 중이다.
◇유가 하락을 이겨낸 정부의 지원=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느는 이유의 중심에는 각 정부의 지원이 있다. 미국 정부의 경우 지난해 전기차 세금공제 한도를 7500달러에서 1만 달러(약 1105만원)로 확대하는 방침을 공표한 바 있다. 또 클린디젤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수소연료 전지차 예산도 대폭 감축해 전기차 지원 예산을 늘리기로 했다. 프랑스 정부는 전기차 구매자에게 6300유로(약 79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해준다. 디젤차를 전기차로 바꿀 경우 1만 유로(약 1254만원)의 보조금이 추가된다.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국도 전기차에 대한 지원을 시작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9월부터 전기차를 포함한 신에너지차 구매 시 소비세 10%를 면제해주고 있다. 또 EV는 5만7000위안(약 1002만원), PHEV는 4만7600위안(약 837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인도는 하이브리드차를 포함한 전기차 구매보조금 지원 방침을 발표했고, 필리핀은 전기차 10만대 보급 정책을 검토 중이다.
기술개발의 결과 늘어난 주행거리와 낮아진 가격도 전기차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GM이 지난달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한 전기차 볼트는 1회 충전으로 321㎞ 이상 운행 가능하며, 가격도 3만 달러(약 3315만원)까지 떨어졌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최도영 연구위원은 “유가가 많이 떨어졌지만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지원 정책이 계속되고 배터리 기술 개발이 빠르게 진행될 경우 전기차 보급량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외의 적 ‘셰일가스’와 여전한 적 ‘배터리’=전기차의 발전을 막는 의외의 적은 셰일가스다. 셰일가스는 우선 유가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전기차 업계에는 1차 위기 요소다. 또 천연가스와 같은 성분인 셰일가스의 생산이 늘면 압축천연가스(CNG) 차량 보급이 증가한다는 점도 위협이 된다. CNG 차량은 가솔린 대비 탄소 배출량이 75% 수준에 불과해 친환경차로 인정받는다. 전기차의 대체재가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주요 선진국들은 CNG 차량 보급 확대를 위해 각종 지원책도 내놓고 있다. 미국은 전기차, 하이브리드차와 함께 CNG 차량도 친환경차로 규정해 가산점을 주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CNG 충전소를 1만개 설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독일은 2018년까지 천연가스 유류세를 면제하고, 이탈리아 역시 올해까지 CNG 차량에 2000∼5000유로의 친환경차 구매 보조금을 지급한다.
아직 부족한 용량의 배터리는 여전히 전기차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전기차 주행거리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1회 충전으로 주행 가능한 거리가 내연기관 자동차의 4분의 1 수준으로 짧아 장거리 이동이 불편하다. 또 배터리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명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클린디젤 자동차같이 연비와 친환경성을 향상시킨 내연기관 자동차의 존재는 아직 배터리 성능이 덜 발전한 전기차 시장을 일정 부분 제한할 전망”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