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초기 태조 이성계에 맞서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핏빛 싸움을 벌인 ‘왕자의 난’은 사극의 소재로 자주 활용돼 왔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왕좌와 권력을 둘러싼 다툼은 예나 지금이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3월 5일 개봉되는 ‘순수의 시대’는 실제 인물 이방원을 중심으로 김민재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왕권의 향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들여다보는 사극 영화다.
왕이 되고픈 왕자 이방원 역은 장혁(사진 위)이 맡았고, 여진족 어미의 소생으로 ‘정도전의 개’라는 별명이 붙은 김민재는 신하균(가운데)이 연기한다. 또 김민재가 사랑하는 기녀 가희는 강한나, 쾌락만을 쫓는 부마 진은 강하늘(아래), 이성계는 손병호, 정도전은 이재용이 맡는 등 연기파 배우들의 호화 캐스팅으로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24일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순수의 시대’는 기대에 부응했다.
1398년, 태조 이성계는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왕자 이방원 대신에 어린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한다. 매서운 발톱을 감춘 채 결전의 날을 기다리던 이방원은 마침내 칼을 뽑아든다. 장혁은 결연한 눈빛으로 야욕에 불타는 이방원의 캐릭터를 잘 드러냈다. 하지만 ‘추노’ ‘뿌리 깊은 나무’ ‘빛나거나 미치거나’ 등 그가 출연한 사극 드라마에서 보여준 이미지가 겹쳐지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방원과 대척점에 있는 김민재는 개국 당시 무공을 세우고 막 태어난 왕국의 불안한 국경을 외적들로부터 지켜내 전군 총사령관인 판의홍 삼군부사에 임명되는 장군이다. 정도전의 도움으로 정상에 오르지만 정작 자기 것을 가지지 못한 외롭고 고독한 인물이기도 하다. 어릴 적 잃은 어미를 닮은 기녀 가희를 통해 처음으로 소유욕을 갖게 되는 그는 욕망과 순수의 경계선에 서 있는 캐릭터다.
데뷔 16년 만에 사극 장르에 처음 도전하는 신하균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김민재를 그럴 듯하게 살려냈다. 그는 촬영에 들어가기 수개월 전부터 몸을 만들었다. 안상훈 감독이 “신경질적인 근육을 만들어 달라”고 농담처럼 던진 주문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흠잡을 데 없는 근육질의 몸매를 영화에서 선보인다. 그는 간담회에서 “신경질을 내면서 몸을 만들었다”고 소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단 한 번도 스스로 그 무엇을 원했던 적이 없었던 김민재 장군.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것을 순수하게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싸우고 그로 인해 상처를 입는 장면은 신하균의 애절한 눈빛과 표정 연기가 아니고선 어려웠을 법하다. 영화 ‘쎄시봉’에서 트윈폴리오의 윤형주 역할을 맡은 강하늘은 왕의 사위라는 자유롭지 못한 위치에서 삐뚤어진 방식으로 욕망을 표출하는 진으로 변신했다.
장혁·신하균·강하늘의 3색 매력 대결이 관심을 모은다. 요즘 한국영화는 김상경·김성균·박성웅이 호흡을 맞추는 ‘살인의뢰’, 김우빈·강하늘·이준호가 뭉친 ‘스물’ 등 3인방 남자배우의 출연이 대세다. 여기에 매혹적인 기녀 가희 역을 맡은 강한나가 가세했다. 강한나의 연기는 ‘신인 여배우의 발견’을 가늠케 한다. 서로 다른 욕망을 쫓는 세 남자와 한 여자의 비밀이 스릴 있게 전개된다.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마상 액션과 격렬한 전투신도 볼거리다. 핏빛 싸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의상의 궁중무용도 볼 수 있다. 붉은 피 속에 태어난 새로운 왕국, 조선의 주인은 누구인가.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일부 장면 때문에 청소년관람불가다. ‘왕의 눈물’ ‘관상’ 등 흥행에 성공한 사극 영화 대부분이 15세 관람가인데 반해 ‘순수의 시대’가 맞닥뜨린 한계가 아닐까 싶다.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권력 둘러싸고 펼치는 세 남자의 암투… 조선 건국 초 왕자의 난 다룬 사극 영화 ‘순수의 시대’
입력 2015-02-25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