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사도 바울에게 명함이 있었다면? 그의 명함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롬 1:1)'이라는 직함이 새겨졌을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는 명함(名銜)을 건넬 일이 많다. 학교나 교회에서 만난 학부모나 교우와 인사를 나누기 때문이다. 대개 이름 연락처 소속기관이 간명하게 담겨 있다. 종종 이 이상(以上)을 담고 있는 크리스천의 명함이 있다. 그림, 성구, 사진…. 이런 명함은 소명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말씀을 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명함 주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명함이 마치 '복음의 날개'를 단 것 같다.
◇인형 만드는 명함=출판사 이새의나무 신정범 대표의 명함에는 하얀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 그림이 있다. 할아버지는 작은 안경을 쓰고 있다. 한손에는 노트, 한손에는 연필을 든 모습이다. 명함 양쪽 끝에는 칼집이 있다. 가로 9㎝, 세로 5㎝ 명함에 다섯 군데에 접을 수 있는 선이 표시 돼 있다. 이 선을 접고 칼집 난 끝을 포개주면 인형이 된다(사진 ①).
“피노키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제페토(Geppetto) 할아버지에요. 2013년 말 한 강의를 듣고 (출판사가) 이야기 속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데 착안했어요.”
이새의나무는 어린이를 위한 기독교 전자서적을 주로 출판하고 있다. 신 대표는 받은 사람이 늘 볼 수 있는 명함을 원했다. 그렇다면 명함첩에 끼워두는 게 아니라 책상 위에 세워둘 수 있어야 했다. 외국의 경우 접으면 의자나 컴퓨터 모양이 되는 명함이 있다. 그는 제페토 할아버지를 인형으로 만들 수 있는 형태를 고안했다.
“처음 만나는 분 중에 제 얼굴을 모르지만 제 명함을 알아보는 분들이 있어요.(웃음) 인형으로 접히니까 여러 장 가져가셔서 주변에 나눠주셔서 그런가 봐요. 크리스천의 명함이라면 말씀이나 이미지를 더해 기독교를 알릴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제페토 할아버지는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인형 등으로 접어 장식할 수 있는 명함은 상대방의 관심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림 보여주는 명함=크리스천 아티스트들은 명함 한 면에 작품 사진을 넣는 경우가 많다. 닥종이 인형작가 신혜정(48·산본산울교회) 집사의 명함 뒷면에는 인형 6개가 서 있다(사진 ②).
“아티스트라고 소개해도 제가 무엇을 하는지 상대방이 잘 몰라요. 작품을 넣어서 제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잘 알릴 수 있어요. 제 작품을 보고 ‘너무 귀엽다’고 말씀하세요.”
사진을 매개로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신 집사는 복음을 전하기도 한다.
“인형이 누군지 물어보는 분이 있어요. 하나님이 만든 천사라고 알려주죠. 더 나아가면 우리 모두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라는 것도 말하게 되요.”
인형을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하다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닥종이 인형은 붙이고 또 붙이고 해서 한 석 달 꼬박 걸려요. 붙이고 보고, 붙이고 보면 흡족할 때도 있지만 저 혼자 얼굴을 찡그릴 때도 있어요. 하나님이 저희를 어루만져 만들어가듯 저도 종이를 붙여 수정해가요. 또 아무리 애써도 똑같은 인형은 안 나와요. 인형이 이 정도인데 하나님 만드신 우리는 각자 얼마나 고유할까 생각하게 되죠.”
성화를 그리는 김용성 화백의 명함에는 예수님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 선교지의 커피 등을 수입하는 ‘얼굴있는거래’ 구명기 대표는 명함 ‘얼’자의 이응에 눈과 입을 그려 넣었다.
◇말씀 읽는 명함=오지숙(39·분당우리교회) 집사의 명함(사진 ③)에 적힌 직함은 ‘엄마’이다. 소속 기관이나 회사명이 적히는 위치에는 ‘독수리 오남매네 집’이라고 적혀 있다. 처음 받아든 이는 오 집사가 대학가 하숙집 주인이 아닌가 짐작한다. 뒷면을 돌려보면 생각이 바뀐다. ‘아 진짜 오남매 엄마인가 보다’라고. 뒷면에는 다섯 아이와 엄마 아빠로 보이는 이들이 잔디밭을 걷는 사진이 있기 때문이다.
“다섯 아이의 엄마로 살아오다 ‘4·1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1인 시위에 참여하고, 진상규명 운동에 참여하게 됐어요. 제 소개를 할 기회가 많은데 명함이 없는 거예요. 대다수 사람이 명함에 자기가 가장 중요시하는 정체성을 담잖아요. 저도 고민했죠. 하나님 제게 주신 가장 큰 사명은 제가 낳은 아이들을 잘 키우는 거더라고요.”
그는 가족사진 아래 성구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를 넣었다.
“참새 같은 작은 새는 자기 힘으로 날갯짓해서 난대요. 그런데 독수리처럼 육중한 새는 상승기류를 타야 나른답니다. 아이들이 하나님의 크신 뜻을 따라 날아오르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명함에 성구를 넣은 사역자나 크리스천은 적지 않다. 오현재(37) 거룩한빛광성교회 부목사는 24일 “대외용 명함에는 교회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문구를 넣으면 어떨까 해요. 또는 이름 연락처만 남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궁금해서 연락하도록”이라고 말했다.
그런 명함 한번 만들어 볼까.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인형으로 변신하고 그림·사진 등 작품 들어 있고… ‘복음 소명’ 담은 크리스천 명함
입력 2015-02-25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