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맘 가난한 사람’ 427장(통 516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5장 1∼3절
말씀 :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을 시작하시면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받을 엄청난 복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복되구나.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여,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그런 사람들의 것이다.”(3절)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그토록 복될까요. ‘가난’은 헬라어로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테네스’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만큼의 가난한 상태요, ‘프토코스’는 절대빈곤, 즉 아무것도 없는 가난을 말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마음이 가난한 자’에서 쓰인 ‘가난’은 후자 쪽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철저하게 비워진, 바닥까지 낮아진 마음’을 가리킵니다. 자기 고집, 자기 의, 자기 생각, 자기 꿈, 자기 자랑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현대 문맹인은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식한 사람의 복이 여기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헷갈릴 것이 없고, 가르쳐주는 대로 배우고 채워넣으면 그것이 지혜가 됩니다. 하지만 선입견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성전에서 기도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교만한 마음으로 거들먹거리며 성전에서 자랑스럽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저 토색하는 사람, 간음하는 사람, 악행하는 이들과 다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내는 저는 저 뒤에서 기도하는 죄인과 다릅니다.”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자기 의와 경건에 대한 자랑일 뿐입니다.
하지만 세리는 어떻습니까. 성전 앞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구석에서 부르짖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께서는 이 둘 중에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의 경건을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음을 철저하게 비워 낮아진 이들의 것입니다. 다윗은 울부짖었습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건지시는 자시라.”(시 40:17) 한 나라의 제왕이 어찌 가난하고 궁핍합니까?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긍휼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소설가인 캐서린 마셜은 말했습니다. “천국에 올라가는 데는 두 날개가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철저한 절망의 날개와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희망의 날개가 그것이다.” 자신에 대해 철저하게 절망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절대신앙을 회복하십시오. 독수리처럼 하늘로 날아오를 것입니다.
기도 : 주님,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절망하게 하시고, 주님을 향해서는 어떤 절망 속에서도 소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서정오 목사(동숭교회)
[가정예배 365-2월 24일] 복 되도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입력 2015-02-24 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