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씨는 27세이던 2000년 경찰공무원으로 임용됐다. 재직 기간 12년 중 7년3개월을 서울 일선 경찰서에서 교통경찰로 근무했다. 업무 특성상 도심에서 자동차 배기가스에 노출되는 시간이 잦았다. 2011년 11월 건강검진까지만 해도 하씨 건강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하씨는 2012년 초부터 기침과 피로를 호소했다. 폐렴 증세가 나타나자 병원을 찾았다. 같은 해 8월 폐암 진단을 받았고, 투병 5개월 만에 40세로 사망했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가족 중 폐암 환자도 없었다. 하씨의 아내는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 재해를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공단 측은 ‘발암물질에 8∼10년 정도 노출돼야 직업병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씨 아내는 2013년 10월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공단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정지영 판사는 “폐암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정 판사는 “하씨가 디젤엔진 배기가스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배기가스가 폐암 원인인지 밝히려면 교통경찰들의 폐암 발병을 비교하는 연구가 수행돼야 하는데 그런 연구는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다른 재판부가 지하주차장 근무자의 폐암을 업무상 재해로 본 것과 비교하면 인과관계를 다소 엄격하게 해석한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2011년 지하주차장에서 7년 정도 청소 일을 하다 폐암으로 숨진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A씨도 하씨처럼 폐암 발병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지하에서 업무를 하며 배기가스 등에 노출된 점, 흡연력이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전문가들은 공단 및 법원이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상황에 따라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노무법인 대유의 이관수 노무사는 “하씨처럼 비흡연자에 폐암 가족력이 없는 사람이 달리 폐암에 걸릴 이유가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흡연력·가족력 없는 교통경찰 폐암 사망… “매연 노출량 입증되지 않았다” 공무상 재해 인정 안한 법원
입력 2015-02-23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