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기자들이 들어 본 설 민심] “경기 최악인데다 서민증세까지 겹쳐 살기 어렵다”

입력 2015-02-23 02:47
이완구 국무총리(가운데)가 22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남동산단 내 전자부품 생산업체인 한국전자재료를 방문, 설 민심 청취를 위해 직원들과 오찬을 하기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출범 2주년을 맞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민심은 싸늘했다. 국민일보 기자들이 설 연휴 기간 전국 각지에서 만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취업난과 경기 악화, 서민증세 등에 불만이 특히 많았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을 지지한 이들 중에도 ‘후회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청와대나 정부의 인적쇄신 가능성에 대해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야당에 우호적이지도 않았다. 야당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며 ‘무조건적인 반대’에서 벗어나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 있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들은 이제는 여야가 정쟁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먹고살기 너무 힘들어요. 요즘 최악이에요”=국민들은 경기가 최악인 데다 연말정산 제도 개편, 담뱃값 인상 등 서민증세까지 겹쳐 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 고흥군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임모(56)씨는 “박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 경제가 더 나빠졌다. 건설경기는 이명박 전 대통령 때보다 더 안 좋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 기계설비 업체에 다니는 전모(36)씨는 ‘연말정산’ 문제로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전씨는 “아내가 월 200만원 조금 넘게 버는데 계산해 보니 연말정산에서 40만원을 토해내는 걸로 나왔다고 하더라.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이래 놓고 정권 지지해주길 바라는 건가. 월급쟁이 좀 그만 괴롭혀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조모(54·여·교사)씨는 “정부의 세금 정책은 해도 해도 너무 한다. 고소득층은 세금을 감면해 주고, 우리 월급쟁이들은 유리지갑”이라며 “미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충남 당진시 양모(53·자영업)씨는 “장사는 안 되고 세금만 늘어나 삶이 더 팍팍해졌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박근혜 대통령 잘한 게 없어요, 찍은 거 후회해요”=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역별로 편차가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대전에 사는 장모(58·자영업)씨는 “박 대통령이 너무 고집스럽고 소통을 하지 못한다”며 “대선 때 지지한 걸 후회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에서 만난 박모(59·레미콘 업체 이사)씨도 지난 대선 때 선택을 후회했다. 박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좀 잘했어? 그래서 박근혜도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보다는 주변에 있는 ‘간신배’들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남 창원에서 중소기업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전모(60)씨는 “박 대통령이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다”며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돌아섰다는 걸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IT업종에 종사하는 강모(61)씨는 “박 대통령이 한 게 뭐 있나.‘박근혜’ 하면 떠오르는 게 없다”며 “항상 박근혜 편이었는데 이젠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부산에 사는 이모(63·자영업)씨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는데 후회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박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 정서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대구에 거주하는 이모(35·회사원)씨는 “박근혜를 찍은 걸 요즘 후회한다. 담뱃값 인상하고 연말정산 문제가 날 돌아서게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전북 무주군에 사는 김모(77)씨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는데 2년 동안 보니 너무 정치를 못하는 것 같다.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고 말했다.

대구에 거주하는 최모(60·자영업)씨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유지했다. 최씨는 “지금 경제가 어렵고 세금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다 이전 이명박 정부 탓이지 박 대통령 탓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불쌍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제주시에 거주하는 이모(52·회사원)씨는 “박 대통령이 갈수록 잘못하는 것 같다. 국민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없고 취업난도 더 악화되는 등 경제 분야도 엉망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개각, 청와대 비서실 개편 등 인적쇄신 기대 이하”=국민들은 설 연휴 전 4개 부처 개각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내비쳤다. 울산시민 한모(45·지방공기업 직원)씨는 지난 개각에 대해 “그걸 개각이라고 할 수 있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박 대통령이 정말 소통과 쇄신의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평가 절하했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장모(58·대전시)씨는 “청와대 중심의 정권이기 때문에 누가 장관이 되었는지 관심이 없다”며 “박 대통령의 독선적인 국정 스타일이 개선되지 않는 한 개각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전남 순천에 사는 박모(47·자영업)씨는 “이완구 총리 건은 정말 실망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인적쇄신은 기대할 게 못된다”며 “청와대에 거는 기대가 이제는 없다. 실망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전모(36·경남 창원시·회사원)씨는 “어느 누구도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대통령이 소통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장관을 바꾸더라도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당도, 문재인도 별로예요”=국민들은 야당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모(42·부산 남구 용호동·자영업)씨는 “여당이나 박 대통령도 못하지만 야당도 잘하는 것이 전혀 없다”며 “야당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다음 대선에서도) 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공무원인 박모(56·여·서울 강서구)씨는 “문재인 대표는 야성적 리더십이 부족하다. 지난 대선에서 낙선하고도 다시 출마하는 것에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에 거주하는 이모(63·자영업)씨도 “야당은 잘한 적이 없다. 정치판에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 문재인은 어차피 구시대 인물이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무원으로 퇴직한 고모(62·여·광주광역시)씨는 야당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고씨는 “박 대통령과 여당이 너무 못하니 그래도 믿을 곳은 야당밖에 없다”며 “다음 대선에 문재인 대표가 출마하면 그를 지지하겠다”고 털어놨다.

◇“경제 좀 살려 주세요. 통합의 정치 부탁해요”=여야 지지층을 가리지 않고 국민들은 모두 정치권이 경제 활성화에 매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대구에 거주하는 최모(60·자영업)씨는 “요새 너무 불경기다. 일거리가 없으니까 밤만 되면 거리가 깜깜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없다”며 “야당도 대통령과 싸우려고만 하지 말고 합심해서 경제를 어떻게 살릴까 고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북 경산시 김모(67)씨도 “여당은 민생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고 야당도 정쟁에서 벗어나 민생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강서구 주민 김모(52·여·공무원)씨는 탕평인사를 주문했다. 김씨는 “대통합을 위해 지금은 통 큰 탕평인사가 필요할 때”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브라질의 룰라,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 등 통합의 정치를 추구했던 세계 지도자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전북 전주시에서 자영업에 종사하는 이모(42)씨도 서민을 위한 정책을 주문했다. 이씨는 “서민 생활과 밀접한 생활요금은 다 오르고 있다. 경기도 언제 좋아질지 가늠할 수 없는데 국민이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비전을 보여 달라”고 정부와 여당에 촉구했다. 이씨는 야당에 대해서도 “여당이 하는 일에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을 만나 설득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무원 출신의 김모(72·강원도 춘천)씨는 “여당은 청와대에 끌려가지만 말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하고 야당도 반대만 하지 말고 국정에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