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지내며 다들 가부장제에 대해 한번쯤은 속상해하거나, 상처받거나, 비판하거나, 한탄해봤을 것이다. 일상의 시간과 공간에서는 그나마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가부장제가 명절이면 부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향에 가기 싫어한다, 어르신들 잔소리에 스트레스부터 받는다, 명절이 되면 기가 죽는다, 선물 꾸러미와 세뱃돈에 신경 써야 한다, 남편이 친가에 가면 힘쓰는 머슴으로 변신한다, 아내가 시댁에 가면 입을 닫는다, 집에선 항상 같이 일하던 남편이 친가나 처가에 가면 TV 앞에만 있다, 명절 지내고 나면 꼭 부부싸움을 한다’ 등. 단순하게 명절증후군으로만 볼 일이 아니고, n분의 1로 일 나누기로 해결될 수 있는 징후들이 아니다. 근본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명절이면 가부장제가 부활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설과 추석이라는 명절 자체가 가부장제에서 유래되었다는 것, 둘째는 친지로 만나는 서클이 커지니 가치관을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것. 평소에 평등과 협력과 공감과 공유라는 가치관이 튼튼하지 못하니 뿌리박힌 가부장제의 가치관이 명절에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권위주의, 상명하복, 체면치레, 허장성세가 등장하고 비교, 질투, 자격지심 같은 부정적인 현상이 등장한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독자적 가치관은 무시되고, 무리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강요받고 무조건 복종을 요구받고, 무리로부터 인정받는 외형적 기준이 획일화되는 것 등 가부장제의 뿌리 깊은 폐해는 구조적인 문제다.
기실 가부장제에 가장 피해를 받는 주체는 남자들이다. 지금도 짓눌려 사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성공 신화, 출세의 환상, 가족 부양 부담 등. 사회에서는 그런 신화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변화하는데도 여전히 그 부담을 안고 사는 남자들이 때때로 가엾기조차 하다. 소수의, 이른바 성공했다는 권위주의적인 가부장들을 위해 수많은 남자들이 피해를 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 남자들이여, 스스로 가부장제를 깨라!
김진애(도시건축가)
[살며 사랑하며-김진애] 남자여, 가부장제를 스스로 깨라
입력 2015-02-23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