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맹경환] 시진핑의 춘제, 박근혜의 설날

입력 2015-02-23 02:20

중국의 춘제(春節·설)는 듣던 대로 요란했다. 하이라이트는 폭죽놀이였다. 중국인들은 액운을 몰아내고 복을 불러온다는 믿음으로 춘제를 즈음해 폭죽을 터뜨린다. 절정은 섣달그믐 자정 무렵이다. 10분 남짓한 시간 베이징의 하늘은 온통 화려한 불꽃의 향연이 됐다. 스모그를 우려해 정부 당국은 자제를 당부했지만 시민들은 아랑곳없었다. 거리 곳곳 시민들은 폭죽을 쏘아 올렸고 아파트 경비원이나 관리들은 만일의 안전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소화기를 들고 서 있을 뿐 말릴 생각은 없었다.

춘제를 앞두고 중국 지도자들이 빼놓지 않는 것이 있다. 이른바 ‘춘제 시찰’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3일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젊은 시절 7년간 하방(下放) 생활을 했던 산시성 옌안시 량자허촌을 찾아 마을 노인들에게 인사하고 주민들에게 위문품을 전달했다. 다음 날에는 시안 고성을 찾아 국민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같은 시간 리커창 총리는 구이저우성을 찾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귀성길 농민공들의 컵라면에 직접 뜨거운 물을 부어줬다.

중국 지도자들의 춘제 시찰은 국민과의 소통에 목적이 있다. 그들이 선택한 장소와 발언에서는 ‘집정 이념’도 엿볼 수 있다. 시 주석은 2012년 11월 공산당 총서기로 취임한 이후 세 번째 춘제를 맞아 민생 시찰을 했다. 2013년 춘제를 앞두고는 간쑤성 란저우시의 양로원을 둘러봤고, 이듬해에는 네이멍구 후허하오터시 아동복지원을 찾았다. 모두 중국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낙후한 서부 지역이었다. 시 주석은 춘제 시찰을 통해 경제 건설과 민생 안정, 소수민족 지역 발전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올 춘제를 전후해 중국에서는 ‘호랑이를 때려잡는 시 주석 캐릭터’가 유행을 하며 인기를 실감케 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전후한 박근혜 대통령의 공개 일정은 거의 없었다. 설 연휴 직전에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 여부가 초미의 관심이었겠고, 설 연휴 동안에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후임 등 남은 인선에 고심을 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국민들과 직접 대면하고 소통하는 일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새로운 마음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더 행복한 새해가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올린 것이 전부였다.

중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는 꽤 높은 편이다. 박 대통령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의 중국어판은 중국에서 스테디셀러다. 박 대통령이 방중하거나 시 주석이 방한하는 등의 계기가 있으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기도 한다. 나이 지긋한 중국학자들 중에는 박 대통령의 팬이라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다. 중국 내 팬클럽인 ‘근혜연맹(槿惠聯盟)’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중국인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여성이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됐다는 점과 한국 경제 도약 시기 지도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자주 묻고는 한다. “박 대통령의 인기가 한국에서 상당히 높지 않나요?” 그러면 항상 “중국에서 인기가 오히려 한국보다 더 높은 것 같다”고 답한다.

국민들이 직접 뽑지 않은 시진핑 주석의 높은 인기와 국민들이 직접 뽑은 박근혜 대통령의 낮은 인기. 이 둘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 난감한 일이었다. 춘제와 설날을 맞는 양국 지도자의 행보가 어느 정도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국민과의 소통 여부 말이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