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저 멀리 푸른 언덕에’ 146장(통 146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 : 십자가 하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가슴이 콱 막히면서 힘들어지십니까? 당연합니다. 십자가가 본래 사람 죽이는 사형틀이었으니 그렇게 느낄 만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행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예수께서 죽어 우리가 살아난 곳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께서 죽으신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자리도 그 십자가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주님의 교회들은 왜 그토록 십자가를 사랑했습니까? 왜 그토록 수많은 십자가들이 만들어지고, 상징화되었습니까? 어떻게 자기 스승이 죽은 십자가를 아름답게 디자인해서 목에 걸고, 반지에 끼고, 문패와 자동차와 온 세상을 장식할 생각을 했습니까.
십자가가 단지 예수님이 죽으신 사형틀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죽어 죄인인 우리가 다시 살아난 곳이요, 예수님의 용서의 표이며 사랑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십자가는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의가 교환되는 즐거운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터”라고 했습니다.
일본의 여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는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고,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지성소가 있고, 아프지 않으면 믿지 못할 기적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아픈 십자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어 모두가 사는 곳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예수님만 죽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도 다 죽어야 하는 곳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 안에서 새사람으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세상을 구원하는 사랑의 사도들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큰 과제는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입니다. 욕망이 죽고, 야망과 자존심과 교만과 고집이 죽고 하나님의 자녀들로 온전히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의인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의인이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2000년 전 바리새인들처럼 모두 다 ‘자기 의’에 사로잡혀 남들에 대해서는 비판을 일삼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허물과 잘못은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죽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나를 죽여 남을 살려야 합니다.
기도 : 나 자신의 자아를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새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 삶을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서정오 목사(동숭교회)
[가정예배 365-2월 23일] 행복은 십자가에
입력 2015-02-23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