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1902∼1950) 목사는 20세기 한국 사회와 교회가 맞닥뜨린 일제 치하와 한반도 분단이라는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경험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직 예수를 닮아가는 삶으로, 한 인간이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큰 무게의 아픔과 시련을 정면 돌파한 조선의 ‘작은 예수’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신앙의 모습은 여러 각도로 나눠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적 당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셨습니다. 손 목사의 신앙 모델은 그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였습니다. 손 장로는 경남 함안군 칠원읍의 3·1운동을 주도하다가 1년 반 정도 옥고를 치른 애국지사였습니다. 손 목사 역시 해방 이후 백범 김구가 자신의 교육 철학과 활동을 물려주고자 할 정도로 민족 상황을 제대로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손 목사는 한국교회의 양심을 지켜낸 분이셨습니다.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일본의 신사참배 정책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꽃피는 봄날에만 주의 사랑이 있음인가”라고 자문하면서 혹독한 옥중생활을 견뎌냈습니다.
셋째, 가장 소외된 이들이었던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손 목사는 ‘14호실’이라 불린 한센병 중환자실의 환자들을 얼싸안고 환자들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낼 정도로 사랑으로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순교를 당하기 전에 이미 ‘사랑의 원자탄’ 그 자체였습니다.
넷째, 손 목사는 이념 갈등과 분열의 아픔을 예수의 사랑으로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이념 갈등과 분열의 상징이었던 ‘여수·순천 사건’에서 그는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학생(안재선)을 양자로 삼고 하나님께 아홉 가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참 순교자였습니다. 한국전쟁 와중에 잠시 몸을 피해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애양원에 남아 한센인들을 지키다 공산군에 잡혀 순교했습니다.
손 목사의 삶은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었습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고 위로함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끝까지 구원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는 말씀을 몸소 삶으로 보여주신 분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손 목사의 사랑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배워야 합니다. 손 목사의 양손자인 제가 제 인생에 새겨진 주홍글씨, 쉽게 드러낼 수 없었던 그 아픈 상처를 품고서도 지금 이렇게 세상 앞에 나설 수 있었던 단 한 가지 근거는 바로 ‘주홍글씨보다 훨씬 더 진하고 뜨거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손 목사의 사랑이 바로 지금 제 안에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게 남겨진 삶의 시간 동안 날마다 그 사랑을 배우고 전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 사랑만이 힘든 시대를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안경선 목사 (두기둥선교회 대표)
[오늘의 설교] 죽음보다 강한 사랑
입력 2015-02-23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