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소폭 개각] 18개월 만에 ‘국정 핵심 플레이어’ 마침표… 물러나는 김기춘 실장

입력 2015-02-18 02:15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완구 국무총리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의가 수용된 김 실장은 임명장 수여식 뒤에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각료, 수석들과 악수하며 무언의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동희 기자

2013년 8월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던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결국 18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정치권과 여론의 인적 쇄신 요구의 상징처럼 비쳐졌던 김 실장은 설 연휴 직전인 17일 박 대통령의 사의 수용 형식으로 퇴진하는 것이다.

다만 김 실장이 곧바로 청와대에서 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후임 비서실장이 정해질 때까지 업무를 최소화할 것”이라며 “비서실장직을 공석으로 남기지는 않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아직 사표 수리라는 행정절차도 남아있다. 김 실장은 23일까지 후임 비서실장이 임명되지 않으면, 그날 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에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후임 실장을 지명하지 않고 김 실장 교체 사실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비서실장 교체 없는 인적 쇄신은 의미가 없다는 민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악화된 민심을 털기 위해선 후임 비서실장을 발표해야 하는데, 마땅한 인사를 찾지 못해 먼저 김 실장 사의 수용을 발표하는 고육책을 썼다는 의미다. 또 취임 2주년에 맞춰 정치적 부담을 털어내고 본격적인 집권 3년차의 국정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김 실장은 그동안 정치권으로부터 현 정부 불통(不通)의 진원지라는 지적을 임기 내내 받아왔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으로서 거듭된 인사 실패는 물론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된 대응, ‘정윤회 문건’ 파동 초기대응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함께 받았다. 퇴진 압박 또한 갈수록 거세졌다. 그러나 청와대 내부적으론 탁월한 업무조율 능력과 조직 장악력을 바탕으로 박근혜정부가 안착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상반된 평가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김 실장에 대해 유례없는 두터운 신뢰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말 드물게 사심이 없는 분”이라며 “가정에서도 참 어려운 일이 있지만 자리에 연연할 이유도 없이 옆에서 도와주셨다”고 했다. 이런 박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 속에 김 실장은 ‘왕실장’ ‘기춘대원군’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당정청을 장악한 국정의 핵심 플레이어 역할을 했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의 사의 수용 발표 전에 이뤄진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 수석들과 사실상 작별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김 실장은 그 자리에서 ‘퇴임’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김 실장의 고별인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김 실장은 “오늘 내가 인사를 많이 하게 되네”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후임 비서실장은 아직도 물음표로 남아있다. 박 대통령이 아직도 장고(長考)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을 대신할 적임자를 찾기가 무척 어렵다는 게 박 대통령의 가장 큰 고민이라는 뜻이다. 비서실장 인선을 미룬 가장 결정적인 배경엔 이런 고민이 담겨 있다.

현재 김 실장 후임으로는 권영세 주중 대사,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이 거론된다. 세대교체 의미가 있지만 야당은 권 대사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관여한 의혹이 있다고 벼르는 상황이다. 현 수석부의장은 김 실장과 동갑(76세)으로 고령이 부담스럽다. 이 밖에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 허남식 전 부산시장, 김병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 황교안 법무부 장관 기용설도 나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