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던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결국 18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정치권과 여론의 인적 쇄신 요구의 상징처럼 비쳐졌던 김 실장은 설 연휴 직전인 17일 박 대통령의 사의 수용 형식으로 퇴진하는 것이다.
다만 김 실장이 곧바로 청와대에서 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후임 비서실장이 정해질 때까지 업무를 최소화할 것”이라며 “비서실장직을 공석으로 남기지는 않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아직 사표 수리라는 행정절차도 남아있다. 김 실장은 23일까지 후임 비서실장이 임명되지 않으면, 그날 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에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후임 실장을 지명하지 않고 김 실장 교체 사실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비서실장 교체 없는 인적 쇄신은 의미가 없다는 민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악화된 민심을 털기 위해선 후임 비서실장을 발표해야 하는데, 마땅한 인사를 찾지 못해 먼저 김 실장 사의 수용을 발표하는 고육책을 썼다는 의미다. 또 취임 2주년에 맞춰 정치적 부담을 털어내고 본격적인 집권 3년차의 국정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김 실장은 그동안 정치권으로부터 현 정부 불통(不通)의 진원지라는 지적을 임기 내내 받아왔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으로서 거듭된 인사 실패는 물론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된 대응, ‘정윤회 문건’ 파동 초기대응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함께 받았다. 퇴진 압박 또한 갈수록 거세졌다. 그러나 청와대 내부적으론 탁월한 업무조율 능력과 조직 장악력을 바탕으로 박근혜정부가 안착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상반된 평가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김 실장에 대해 유례없는 두터운 신뢰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말 드물게 사심이 없는 분”이라며 “가정에서도 참 어려운 일이 있지만 자리에 연연할 이유도 없이 옆에서 도와주셨다”고 했다. 이런 박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 속에 김 실장은 ‘왕실장’ ‘기춘대원군’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당정청을 장악한 국정의 핵심 플레이어 역할을 했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의 사의 수용 발표 전에 이뤄진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 수석들과 사실상 작별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김 실장은 그 자리에서 ‘퇴임’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김 실장의 고별인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김 실장은 “오늘 내가 인사를 많이 하게 되네”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후임 비서실장은 아직도 물음표로 남아있다. 박 대통령이 아직도 장고(長考)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을 대신할 적임자를 찾기가 무척 어렵다는 게 박 대통령의 가장 큰 고민이라는 뜻이다. 비서실장 인선을 미룬 가장 결정적인 배경엔 이런 고민이 담겨 있다.
현재 김 실장 후임으로는 권영세 주중 대사,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이 거론된다. 세대교체 의미가 있지만 야당은 권 대사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관여한 의혹이 있다고 벼르는 상황이다. 현 수석부의장은 김 실장과 동갑(76세)으로 고령이 부담스럽다. 이 밖에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 허남식 전 부산시장, 김병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 황교안 법무부 장관 기용설도 나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2·17 소폭 개각] 18개월 만에 ‘국정 핵심 플레이어’ 마침표… 물러나는 김기춘 실장
입력 2015-02-18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