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할리우드 스타 조니 뎁. 두 배우의 매력이 십분 발휘된 영화가 나란히 상영 중이다. 지난 17일 개봉된 ‘이미테이션 게임’에서는 천재 수학자로 변신한 컴버배치의 연기를 만끽할 수 있고, 18일 개봉된 ‘모데카이’에서는 미술사기극을 꾸미는 조니 뎁의 코믹 캐릭터를 감상할 수 있다. 여성 팬에게 특히 인기 높은 두 배우의 흥행 대결에 관심이 쏠린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종식을 무려 2년이나 앞당기고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젊은 수학자 앨런 튜링의 얘기를 다뤘다. 한동안 아무도 그가 연합군의 승리를 도운 사실을 몰랐다. 영국 정부가 그의 업적을 50년간 함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크로스 퍼즐을 푸는 것을 좋아한 튜링은 시대를 앞서갔지만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비운의 천재였다.
영국 드라마 ‘셜록’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컴버배치는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못하는 외골수 천재부터 영웅과 범죄자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까지 대체 불가능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컴버배치가 시나리오를 접하고 모튼 틸덤 감독을 먼저 찾아가 출연을 요청했다고 한다. 수백 개의 다이얼과 붉은 선으로 이뤄진 암호 해독기에서 암호를 해독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은 무한대에 가까운 암호조합을 만들어내는 기계 ‘에니그마’(수수께끼)를 활용해 무전을 주고받았다. 컴버배치는 길게는 2000만년이 걸리는 암호를 20분 만에 해독하는 튜링의 천재성을 잘 표현했다. 겸손함과 사교성이 전혀 없어 이중첩자라는 의심까지 받은 인간적 고뇌도 충실히 그려냈다. 수학공식에 흥미가 없는 관객은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다. 15세 관람가. 114분.
‘모데카이’(데이빗 코엡 감독)는 조니 뎁의 콧수염이 빛난다. 자신의 매력이 팔(八)자에 끝이 위로 말린 콧수염이라고 여기는 찰리 모데카이. 한때는 잘 나가는 영국 귀족이었지만 지금은 파산 위기에 처한 미술품 딜러다. 그에게 특별한 임무가 주어진다. 복원 도중 감쪽같이 사라진 고야의 명작 ‘웰링턴의 공작부인’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미술품 복원전문가는 이미 살해당한 상황이다.
다른 사람들이 “입술 위에 벌레가 둘둘 말려 있네”라고 놀려대지만 정작 모데카이는 “우리 선조들은 모두 콧수염을 길렀다”며 과도하게 집착하고, 부인 앞에서는 꼼짝 못하면서도 허세 넘치는 말투에 능글맞은 캐릭터다. 조니 뎁은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모데카이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능청스럽지만 결코 밉지 않은 매력으로 연기한다. 슬랩스틱 코미디도 선보인다.
조니 뎁이기에 ‘천재 사기꾼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사기극’이 가능했다. 매번 독특한 비주얼과 독창적인 캐릭터를 선보여온 조니 뎁이지만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 선장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외모와 복장은 ‘캐비리안의 해적’에 비해 한층 깔끔해졌지만. 유머 코드가 가득하지만 완급 조절에 실패해 막판에는 조금 식상한 느낌도 든다. 15세 관람가. 106분.
두 남자 배우와 짝을 이룬 두 여배우의 연기도 볼만하다. ‘이미테이션 게임’에서는 ‘비긴 어게인’에서 노래실력을 뽐낸 키이라 나이틀리가 암호 해독팀의 유일한 여성 멤버 조안 클라크 역으로 컴버배치와 호흡을 맞췄다. ‘모데카이’에서는 귀네스 팰트로가 조니 뎁의 부인 조안나로 나온다. 콧수염을 밀 때까지 각방을 쓰겠다고 선언하는 등 자존심 강하면서도 요염한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존재감甲’ 두 남자의 격 다른 천재 연기
입력 2015-02-23 0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