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난 용? 개천서 살았던 건 맞는데 용인지는 몰라”… ‘비주류 변호사’ 김한규 서울변회 회장

입력 2015-02-18 02:13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이 13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밝게 웃으며 사법시험이 존치돼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김 회장은 “사법시험이 사라지면 나 같은 사람은 절대 법조인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희 기자

서울지방변호사회 김한규(44) 회장에게는 ‘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붙어 다닌다. 가정형편은 한 번도 부유했던 적이 없었고, 삼수 끝에 간신히 들어간 대학은 당시까지 사법시험 합격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비주류 대학’이었다. 사법시험도 12년 만에 늦깎이로 합격한 그가 지난달 서울변회 93대 회장에 선출됐다.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만난 김 회장은 “개천에서 살았던 것은 맞는 듯한데, 내가 용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 회장은 ‘공부 못하는 학생’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노는 학생’도 아니었다. 남들 하는 만큼 공부하고 놀았다고 한다. “시험기간에는 시험범위 공부도 하고 그랬는데, 이상하게 성적은 잘 안 나왔다. 난 공부랑은 인연이 없었다. 책 읽는 건 좋아했는데, 국·영·수는 싫은 걸 어쩌겠나.” 서울 상문고를 졸업할 때 반 60명 중 40등이었다. 그는 “59명 중 56등까지 해 본 적이 있습니다”라며 웃었다. 교편을 잡았던 부모님은 아들 성적을 나무라지 않았다.

김 회장이 받아든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이 없었다. 재수를 했다. 하지만 역시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그는 “불안했다. 재수생은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인도 아닌 어정쩡한 경계를 사는 ‘무직자’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이 잘 안 나오더라”고 말했다. 결국 1년을 더 공부해 가천대(당시 경원대) 법학과에 90학번으로 들어갔다. 법학과는 “그냥 시험점수에 맞춰” 선택했다.

김 회장은 대학 1학년이 돼서야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1990년대는 사회가 ‘민주화’로 들어서기 시작한 격변기였다. 내가 어떤 사람이 돼서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 끝에 나온 답이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결심에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어머니였다. 단 한 번도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말을 부모님에게 해본 적이 없던 그였다. 그러나 ‘낙방의 연속’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회장은 12번 사법시험에 도전해 11번 떨어졌다. 대학 선배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도 없었고, 주위에 함께 공부할 동료도 없었다. 그는 “3, 4년 떨어지고 나니까 ‘내가 지금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 건가’ 하는 근본적인 불안감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어머니다. 그는 “1995년 경기도 마석 근처 산골 고시원에서 공부할 때였다. 어머니와 함께 시험을 보러 상경하던 중에 교통사고가 나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내 결심을 가장 응원해주셨던 분인데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어도 그 말을 허락해줄 분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끝까지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가정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1000만원짜리 전셋집이 김 회장 가족의 전 재산이었다. 김 회장은 독서실·고시원 총무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30만∼40만원씩 벌어가며 공부했다. 세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학교 식당일은 차라리 고마웠다. 결국 2004년 12번의 ‘도끼질’ 끝에 사법시험이라는 ‘나무’가 넘어갔다.

김 회장의 주요 공약은 사법시험 존치다. 나승철 전임 회장 시절 부회장 업무를 맡을 때부터 그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것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사법시험이 사라지면 나 같은 사람은 절대 법조인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당장 수천만 원 로스쿨 학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돈 때문에 법조인을 꿈꿀 수 없다면 기회가 공평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사법시험과 로스쿨이 공존한다면 서로 다른 경로를 거친 변호사들 사이에 경쟁이 생기고 법률 서비스 질이 향상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김 회장은 “임기 동안 변호사 업계 전반의 잘못된 관행을 고쳐 나가는 데 전력하겠다”고 말했다. 당장 3월부터 변호사법을 위반하는 법조 브로커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제도가 시행된다. 흔히 ‘사무장’이라고 불리는 법조 브로커는 소송 당사자와 변호사를 중개하며 수수료를 챙긴다. 사건 수임료가 높아지는 이유다. 또 서울변회는 공익소송을 전담하는 법률사무소 지원 방안도 상반기 중에 시행해 나갈 방침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