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권리금 보호해준다더니…” 강남역 커피점 라떼킹 주인 엄홍섭씨의 지옥같은 설맞이

입력 2015-02-18 02:11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회원들이 16일 서울 강남구 커피점 라떼킹 앞에서 임차상인 권리금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맘상모 제공

“내려놔, 내려놓으라고!”

16일 오후 4시 서울 강남역 근처 커피점 ‘라떼킹’ 앞. 건물주가 준비한 크레인이 가로세로 각각 3m 크기의 철제 컨테이너를 들어올렸다. 고함이 터졌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회원 30여명이 달려갔지만 철거용역 70여명이 앞을 막았다. 가게 안에서 문을 잠근 채 철거 현장을 바라보던 라떼킹 주인 엄홍섭(60)씨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 가게에 우리 가족 목숨이 달려 있다.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우리 보고 죽으란 얘기냐….”

엄씨는 23년 직장생활을 접고 2011년 이 커피점을 열었다. 권리금 1억6000만원에 보증금 4800만원, 인테리어 비용까지 2억8000만원이 들었다. 퇴직금에 대출을 받아 마련한 가게는 10평 남짓한 규모로 작았지만 단골이 많았다.

2013년 7월 건물주가 갑자기 이 건물을 재건축하겠다고 통보했다. 건물이 헐리면 엄씨는 권리금 1억6000만원을 날리게 된다. 권리금은 이 가게에서 장사할 다음 상인에게 받아야 할 돈인데 건물이 사라지면 다음 상인이 없으니 돈 받을 곳도 없다. 고작 2년 장사하고 가족의 생계와 노후가 달린 밑천을 통째로 잃게 된 상황이다.

건물주는 점포를 빼라며 명도소송을 냈고 엄씨는 지난해 8월 패소했다.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15일 두 차례 들어온 강제집행을 엄씨와 맘상모 회원들이 몸으로 막았다. 그 사이 건물주는 라떼킹 바로 옆 상점 입구를 2m 높이의 합판으로 막았다. 합판에 가려 라떼킹 출입문이 잘 보이지 않자 엄씨는 180만원을 들여 가게 앞에 컨테이너 출입구를 만들었다. 그냥 쫓겨나지 않으려고 ‘저항’을 시작한 것이다.

세 번째로 강제집행이 들어온 16일 오후 1시 철거반이 기습적으로 들이닥쳤다.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던 엄씨가 황급히 문을 잠그자 유리창을 깼다. 엄씨는 주방에 있던 칼을 집어 자기 목에 갖다 댔다. 가게로 들어오면 여기서 죽겠다고 소리쳤다. 장시간 대치 끝에 집행관은 오후 3시쯤 철수했다.

결국 엄씨는 설 연휴 내내 가게에 머물며 지키기로 했다. 집행관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명도소송 패소 이후 6개월간 그를 괴롭힌 불안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 엄씨는 “가게 주인에서 순식간에 목숨을 놓고 빌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대통령이 직접 약속한 상가 권리금 보호 입법이 계속 미뤄지면서 상인들은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권리금을 법제화해 엄씨 같은 임차상인을 보호하겠다고 공언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미적지근한 정치권과 정부의 태도 탓에 이런 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권리금 법제화 방안이 담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7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회에 제출됐다. 골자는 세 가지다. ①권리금을 법제화하고 ②임차상인이 다음 상인에게 권리금을 받을 수 있도록 건물주가 협력토록 의무화했다. ③건물주가 바뀌어도 임차상인에게 5년간의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해준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도 지난해 말 같은 법 개정안을 내놨다. ①보증금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상가건물에 동일하게 법을 적용하고 ②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을 10년으로 하며 ③건물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 때 ‘퇴거보상제도’를 도입토록 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엄씨도 구제될 수 있었다.

법안을 만들어 ‘생색’낸 정치권은 이후 손을 놓고 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24일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 이 법안들을 넘겼다. 그러나 두 달간 진전이 없었다. 서영교 의원 측은 “오는 24일 열리는 법안소위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간 계약갱신요구권 보장기간과 재건축 보상을 둘러싼 입장 차이가 커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