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주요 도시는 요즘 ‘거리의 아이들’로 넘치고 있다. 인구 190만명의 수도 베이루트에서만 1500명 안팎의 낯선 아이들이 거리에서 껌을 팔거나 구두닦이 등으로 생활하고 있다.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 대부분은 내전을 피해 쫓겨 온 시리아 아이들이다. 국제기구들은 거리가 아닌 자동차 정비소나 식당, 상점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아이들까지 합하면 수만 명의 시리아 10대 아이들이 레바논에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16일 유니세프와 국제노동기구(ILO), 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레바논 내 시리아 출신 10대들 대부분이 노동착취와 구타, 성폭행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레바논에는 100만명의 시리아 피난민이 있는데 이 중 절반이 18세 이하 미성년자다.
시리아 서북부 알레포 출신의 모하메드(12)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2년간 하루 14시간 일해왔다. 가족의 생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한 달에 100달러(11만원)를 받는데, 그마저도 일부는 동료들한테 빼앗기기 일쑤였다. 그는 그래도 돈을 받을 수 있기에 정비소 사장의 폭행도 잘 견뎌냈다. 사장은 종종 망치로도 때렸고, 레바논인 동료들도 구타를 일삼긴 마찬가지였다.
모하메드는 그래도 ‘괜찮은 편’에 속한다. 시리아 남서부 다라 출신인 하산(13)은 낮에는 베이루트 시내에서 구두를 닦거나 구걸로 살아가고, 밤에는 다리 밑에서 잠을 잔다. 하산은 현지 깡패들한테 자주 얻어맞기도 한다. 그렇게 번 돈을 시리아 가족에게 부친다. 하산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내가 학교에 가면 가족의 생계는 누가 책임지냐”고 반문했다.
남자 아이들은 그래도 낫다. 국제기구 조사 결과 하루에 35달러(3만8000원)를 버는 아이가 나왔는데, 알고 봤더니 매춘을 하고 있었다. 매춘이 아니더라도 일터나 거리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국제기구가 레바논 내 시리아 10대 청소년 700명을 조사했더니, 절반 이상이 하루도 쉬지 않고 1주일 내내 일한다고 답했다. 또 많게는 하루 16시간 노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에 버는 돈은 평균 12달러(1만3000원)가 채 안 됐다. 아이들 3명 중 한 명꼴로 절도 등으로 구속 경험이 있거나 수배 대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체의 6%가 성폭행을 당했다. 거리에서 듣는 욕설이나 시리아인의 멸시 어린 눈길은 불평꺼리도 못된다. 사정이 이렇지만 고통은 현재에서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현재의 비참한 삶이 성년이 되어도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다. 현재 시리아 피난민 아이들 6명 중 5명꼴로 문맹이다. 2011년 3월 시작된 내전이 4년이나 이어지다보니 아예 학교 문턱에 가보지 못한 아이들도 속출하고 있다. 이 아이들의 삶은 전쟁이 끝나도 정상화되긴 쉽지 않다.
앤서니 맥도날드 유니세프 레바논 지부 책임자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내전 때문에 학교 밖으로, 나라밖으로 쫓겨난 아이들은 결국 (특정 연령대가 통째로 사라져버린) ‘잃어버린 세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잃어버린 세대’가 생기지 않으려면 시리아 내 평화를 빨리 되찾는 게 최우선이라고 했다. 또 국제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난민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폭격’ 피한 아이들을 기다린 건 ‘폭력’이었다… 레바논 거리의 시리아 아이들
입력 2015-02-18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