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입력 2015-02-18 02:20

어릴 적 설 풍경을 기억한다. 멀리 사는 친척들이 지금보다 훨씬 숨 막히는 교통체증을 견디며 고향으로 내려왔고 우리는 한 시간을 일분처럼 느끼며 사촌들을 기다렸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보고 싶어서.

하지만 요즘 나는 차표를 구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명절에 종종 서울에 머물렀다. 그렇게 한해 두해 쌓이다 보니 언제부턴가 결혼 서두르란 소리가 듣기 싫어 집에 가는 게 꺼려졌다. 어릴 땐 명절이 다가오면 새 옷을 머리맡에 두고, 멀리 서울 사는 사촌들 만날 생각에 설레어 잠을 뒤척였는데 이젠 추억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나는 깨달았다. 안부를 묻고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기 위해 모이는 날이 바로 명절이라는 것을. 이제는 어린 조카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새 옷을 입고 설레며 사촌들을 만나러 올 것이다. 다 커버린 나의 사촌들은 부모가 되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들어설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정신없는 나날들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비록 나는 아직 부모의 삶을 알지 못하지만 어린 시절 함께 보낸 사촌들이 아기 엄마, 아빠가 된 모습이 신비로워 마냥 바라볼 것이다.

공교롭게 작년 12월 친가와 외가 모두 상을 치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슬펐지만 어른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둔 뒤였다.

하지만 당신들의 형제가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자 나의 부모님을 포함해 어른들이 조금씩 애잔한 눈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이렇게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언젠가 영영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만날 수 있을 때 만나야 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그토록 사소한 것을 일상에서 잘 못할 때가 많다.

이제 내게 명절은 가족과 친척의 안부를 묻는 날이 되었다. 이번 명절 친척들과 두런두런 둘러앉아 오래전 명절을 추억하고 윷놀이를 해볼까 한다. 마주보고 안부 묻고 함께 설을 쇠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기억하면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

곽효정(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