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봉래 (13·끝) 죄와 벌 넘어 담 안 형제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입력 2015-02-18 02:45
지난해 12월 말 김봉래 목사(앞줄 오른쪽 세 번째)가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신우회 예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김 목사 오른쪽은 이소민 판사.

2005년 12월 교도관으로서 정년퇴임하고 더 열심히 갇힌 자와 소외된 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기한이 있고 시기가 있나 보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걸어가려고 한다. 30년을 교정선교에 매진해오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병도 얻었으나 지금은 회복 중이다.

건강을 위해 매일 걷는 편이다. 그러다가 누군가를 만나면 전도한다. 몇 년 전에는 운동하러 갔다가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가을 농사만 짓고 꼭 교회에 가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를 만나 물어보았다. 돌아가셨다 했다. 어르신은 돌아가시면서 나를 찾았다고 한다. 전도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바로 시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홍성 지역 복음화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앞으로의 전도는 가가호호 방문보다는 직장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장은 그리스도인이 생활하는 곳이다. 그의 일을 통해 삶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직장 속에서 자신을 숨기기도 한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일터에서 자신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식사 기도만 한다고 기독교인은 아니다. 크리스천 직장인이라면 동료 이웃을 사랑하고 일 자체를 기독교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차원에서 만나는 직장인마다 신우회를 설립하자고 호소했다. 특히 공직 사회에서 신우회 조직은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시민을 향한 친절 행동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했다. 그런 호소에 동참이라도 하듯 2003년 홍성검찰청을 시작으로 신우회들이 하나둘 창립되기 시작했다. 성령의 불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홍성군 직장연합회 창립예배를 드렸고 경찰서 신우회, 군청 신우회가 줄줄이 생겼다. 지난해에는 홍성 직장선교대학도 개설해 명실공히 홍성 직장 선교를 위한 훈련센터를 만들었다.

경교대교회는 2011년 경비교도대 제도가 폐지되면서 홍성교도소교회로 이름을 바꿨다. 교회를 거쳐간 대원들만 해도 1000명이 넘는다. 95년부터는 브니엘성경대학을 개설해 깊이 있는 성경공부를 제공했다. 브니엘성경대학은 군부대 최초의 성경대학이었다. 사연도 많아 입대하면서 몸에 지녔던 부적을 찢어버린 대원, 전역을 앞두고 진로를 위해 금식하며 철야기도를 드렸던 대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신학대로 편입한 대원 등 16년간 주님의 일꾼을 배출했다.

돌이켜보면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던 일이 이루어졌다. 수많은 재소자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시작으로 교도소 안에 교회를 세우고 만남의 집을 완공한 것 등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역대하 말씀에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너희와 함께 하리라”(20:17)는 말씀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다.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신다. 나는 그 일하심에 힘입어 또 다시 꿈을 꾼다. 바로 김치공장이다. 출소자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다. 그들의 땀과 정성으로 김치를 만들고 그곳을 통해 복음이 전해진다면 이보다 더 뜻 깊은 일도 없으리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복음을 듣는 게 우리들 인생의 목표가 아닌가 싶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쉼 없이 계속될 것이다.

끝으로 가족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자신의 투병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자리를 지켜준 아내와 애교 넘치는 편지로 용기를 더해주는 딸 선경이, 신학을 공부하며 아빠를 응원한 성연과 며느리 명선 내외는 하나님의 선물임에 틀림없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