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역에서 서울 영등포역까지 매일 무궁화호 열차로 통학하는 대학원생 안모(27·여)씨는 열차에 오를 때마다 ‘복불복 게임’에 도전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악취’ 때문이다. 지난 10일 오전엔 화장실에서 두세 자리 떨어진 곳에 앉았는데도 문이 열릴 때마다 냄새가 진동했다. 밤늦은 귀갓길에는 화장실 칸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가 악취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역무원에게 부탁해 자리를 옮긴 적도 여러 번이다.
대전역에서 영등포역까지 자주 오가는 김모(65·여)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열차 내 지린내 때문에 역무원에게 자주 불편을 호소하는데 별 도리가 없는지 알았다는 말뿐일 때가 많다”고 했다.
1980년 우등형 전동차로 도입됐다가 이제 근교에서 서울을 오가는 샐러리맨과 학생 등의 발 역할을 하는 무궁화호가 ‘난데없는 악취’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객차의 절반 이상이 운행한 지 15년이 넘어 낡은 탓이 크다. 최근 사용자가 급증했는데 청소는 여객팀장 등이 휴지로 닦아내는 정도다. 코레일도 이런 문제를 알지만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악취의 원인으로는 낡은 시설과 많은 유동인구가 첫손에 꼽힌다. 16일 코레일에 따르면 무궁화호의 연간 여객수송 인원은 2007년 5532만438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한 뒤 꾸준히 늘어 2013년 6716만3021명에 이르렀다. 이에 반해 전체 896개 객차 중 470개의 차령이 16∼25년(2013년 기준)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배설물을 철로 밖으로 투기했던 과거와 달리 종착역까지 차내에 보관하기 때문에 장시간 여러 승객을 수송하면서 종점인 서울에 다다르면 악취 정도가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후화된 열차가 많아 관리가 어려운 데다 승객들의 차내 흡연 등이 가세해 악취가 심해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승객들이 그때그때 승무원에게 불만을 제기하는데도 코레일 홈페이지나 전화로 접수된 민원이 적지 않다. 접수된 민원 중 ‘차내’를 키워드로 추출한 결과 2012년부터 3년간 무궁화호 악취 민원은 KTX와 새마을호 악취 민원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았다.
얼마나 심하기에 이럴까. 우송대 철도건설시스템학과 박상진 교수 연구팀은 2013년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오후 시간대에 무궁화호 5개 열차의 화장실 67곳을 대상으로 악취 강도를 조사했다. 냄새가 거의 없는 0도에서부터 악취가 비교적 심하게 느껴지는 3.3도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24%(16곳)는 현행 악취방지법 기준치인 2.5도를 넘어섰다. 악취 정도를 정량화한 ‘복합악취 희석배수’를 측정했더니 절반 정도만 현행 악취방지법의 배출허용 기준치 이내였다. 무궁화호 화장실은 남자화장실과 남녀 공용화장실로 이뤄져 있는데 공용화장실이 남자화장실보다 냄새가 더 심하다는 점도 드러났다.
코레 코레일은 2010년 물 대신 고체 상태의 미생물 세정제를 사용하는 친환경 소변기를 새마을호와 무궁화 열차 100여량에 설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장이 잦고 청소가 어려워 추가 설치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박 교수는 “임시방편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악취 저감목표 수준을 설정하고 구체적 대안기술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수민 기자, 서희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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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무궁화호 통근 열차는 악취를 싣고… 문 열릴때마다 화장실 냄새 진동하여 고통 호소
입력 2015-02-17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