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수습기자 채용이 진행 중이다. 지원자 600여명 가운데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을 통과한 55명을 대상으로 사진을 묘사하고 현장 르포 기사를 쓰도록 했다. 지팡이를 짚고 산책을 하는 시골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웃는 얼굴이 담긴 사진 한 장씩을 나눠줬다. 600자 분량으로 느낌을 묘사하되 상상력은 물론 인생관이나 철학까지 담아도 좋다고 했다. 수험생들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진 묘사는 올해 처음 실시하는 방식이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원고를 채점해 보니 전반적으로 성적이 저조했고 편차도 컸다.
이어 점심시간을 이용해 여의도 식당가를 두어 시간 돌아본 뒤 시험장으로 돌아와 1시간여 동안 1400자 안팎으로 르포 기사를 작성토록 했다. 르포 기사는 매번 실시하는 것이어서 비교적 고른 수준을 보였다. 상당수 수험생들은 주제를 칠판에 적자마자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원고를 작성할 때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밖에서 취재를 하면서 인터넷에서 검색한 내용을 잔뜩 써넣은 수험생도 많았다.
수습기자 시절 200자 원고지 5장 분량의 기사를 쓰느라 밤을 새우며 끙끙댔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초년생 기자들이 기사를 곧잘 쓰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터넷 여기저기서 긁어와 짜깁기한 기사도 많다.
스펙쌓기에 밀려 인문학은 뒷전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고 토익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지는 않다.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그전에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등 IT 기기들이 많아 심심할 틈이 없다.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대학 시절을 보냈던 386세대들이 사회과학 서적이라도 읽었던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지난해 국립 10개 대학 도서관 대출 상위 30개 도서의 대출 건수는 1만6177건으로 10년 전의 4만1765건보다 2만5588건(61%)이나 감소했다. 책을 읽더라도 흥미 위주의 책이 많다. 대학교에 다니는 딸이 열심히 읽는 책을 보니 ‘해리포터’ 시리즈였다.
대학도 이공계 중심으로 취업이 잘 되는 학과는 늘리고 그렇지 못한 인문사회 분야 학과는 통폐합하거나 정원과 교수를 감축하고 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의 경우 재학생은 230명인데 전임교수가 3명뿐이다. 교수 3명이 각각 비평, 시, 소설 전공으로 드라마나 시나리오·동화 등을 전공한 교수는 없다.
기업들의 인문계 출신 홀대 여전
대학의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지만 시장논리에만 맡기면 인문학은 위축된다. 대학이 취업 준비생을 양성하느라 사고력·창의력을 길러주는 데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과 기술을 결합해 애플 신화를 만들어냈다.
기업들의 인문계 출신 홀대도 여전하다. 그나마 삼성이 인문계 학생들을 뽑아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키우는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계열사 중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삼성BP화학, 삼성바이오에피스 등은 이번 공채에서 인문계 출신을 한 명도 뽑지 않았다. 인문계 출신을 일부라도 모집했던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 포스코ICT 등도 이공계만 모집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화려한 결과는 내지 않지만, 느리면서도 견실하게 사회를 지탱해주기 때문”이라며 “소설이 없어도 사회는 직접적으로는 고통 받지 않지만 소설이 없으면 사회는 점점 윤기 없이 비뚤어지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와 통찰의 폭을 넓히는데 인문학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신종수 편집국 부국장 jsshin@kmib.co.kr
[돋을새김-신종수]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입력 2015-02-17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