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방법이 없는데, 왜 굳이 서울을 가냐고 말리더군요. 보호자도 환자도 힘들어지고 돈만 잃게 된다고요. 의사 입장에서는 무작정 서울 가는 게 멍청해 보일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여기서 주는 약만 먹으며 죽는 날을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죽더라도 좋다는 병원은 다 다녀보고 좋다는 약은 다 먹고 싶은 게 환자 마음 아닌가요.”
남편 우강현씨의 달력에는 빨간 색 동그라미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동그라미가 쳐진 그날은 진행성 위암으로 투병 중인 아내와 서울의 한 대형병원을 방문하는 날이다. 이 대형병원에서 남편 우강현씨는 나름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병원 진료가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아내에게 줄 도시락을 들고 진료실 밖을 서성인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아내가 나오길 기다린다. 한 번도 병원에 아내를 혼자 보낸 적이 없다. 또 아픈 아내를 아들, 딸들에게 맡기는 법이 없다. 양복은 늘 깔끔하다. 지방 시골에서 올라왔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싫어서란다. 진료가 끝나고 아내는 남편이 싼 도시락을 먹고 다시 항암제를 맞으러 주사실로 들어간다. 남편의 기다림은 계속된다. 남편 우씨는 아내가 애당초 선고받은 날짜보다 6개월은 더 버티고 있다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이들 부부도 서울로 오기까지 맘고생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는 항암치료 받는 동안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유독 길게 느껴지는 이번 겨울 동안 힘든 항암치료만 끝내고 나면 우리 부부에게 다시 봄이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암 덩어리는 전혀 줄지 않았어요. 다른 항암제로 새로 시작해보자는 의사 얘기에 우리 부부는 서울로 가보겠다는 이야기를 꺼냈죠. 의사는 만류하더군요. 처방받은 항암제는 어느 병원을 가나 똑같고, 큰 병원일수록 지방 암환자에게만 접근하는 사기꾼이 많다는 거예요. 아내가 이대로 떠난다면 그 후회로 내가 살지 못할 것 같아 아내 손을 잡고 올라왔죠. 그런데 서울서 처음 만난 종양내과 교수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어요. 임상시험을 해보자는 거예요. 우리는 고민하지 않았어요. 의사를 믿었다기보다 아무것도 못해보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다행히 투여 받은 신약은 아내에게 별 부작용을 보이지 않았고 치료 성과도 좋았죠. 서울로 오지 않았다면 아내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겁니다.”
우강현씨 부부처럼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아 무작정 상경하는 암환자가 많다. 지난해 정부조사에 따르면 빅5로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 지방 환자 수는 전체의 60%를 넘어섰다. 환자가 한쪽에 몰릴수록 의료 양극화는 심해진다. 이를 우려한 기사들이 나오지만 지방 암환자들의 서울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다만 지방 암환자의 서울행을 무조건 말려선 안 된다는 걸 이번 사례에서 보여준다. 신약의 효능을 알아보는 임상시험의 상당수가 환자가 많은 서울 대형병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보니 지방에서는 신약의 기회를 얻기 힘든 게 사실이다. 모든 임상시험이 좋은 결과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에게는 기존의 방법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번에 만난 우씨는 아내와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투병기간 중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병원 가는 날은 소풍 가는 날입니다. 도시락을 싸고, 아내의 삶을 며칠은 더 연장할 수 있는 날이니까요.”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
[김단비 기자의 암환자 마음읽기] 할 수 있는 한 서울행…그들은 오늘도 즐겁게 상경한다
입력 2015-02-16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