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敵將까지 모셔왔다… KB금융의 파격 용인술

입력 2015-02-16 02:21
윤종규 회장 취임 이후 리딩뱅크 탈환을 노리는 KB금융그룹의 사외이사 선임 과정이 금융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최대 경쟁자인 신한금융 사장 출신 인물을 영입하고 주주가 제안한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기용하는 인사 혁신을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입 인사의 면면을 보면 슈퍼 영웅을 모아놓은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를 떠올릴 정도로 주요 경쟁사 출신들이 많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3일 최종 사외이사 후보 7명을 선정했다.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최영휘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이다. 최대 라이벌인 신한금융의 최고위급 인사를 사외이사로 기용한 것이다.

최 전 사장은 1982년 신한은행 출범 당시 합류한 신한의 창립 멤버다. 한국은행에 입사한 뒤 행정고시를 거쳐 재무부 사무관으로 공직에 진출했지만 신한은행 출범에 합류했다. 국제부장, 뉴욕지점장, 종합기획부장 등 요직을 거친 뒤 2003년 신한금융지주 사장에 올랐다. 당시 라응찬 회장에 이어 그룹의 2인자인 막중한 직책이었다. 당시 최 사장은 굿모닝증권과 조흥은행 인수를 진두지휘했지만 라 회장과의 불협화음 끝에 2007년 신한을 떠났다. 일부에서는 2인자를 견제하는 라 회장의 뜻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때 금융계를 호령했던 KB금융은 리딩뱅크 자리를 신한금융에 넘겨준 지 오래다. 때문에 KB로서는 신한이 반드시 꺾어야 할 라이벌인 셈이다. 신한금융의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최 전 사장을 영입한 것은 리딩뱅크 탈환이라는 윤 회장의 의지가 적극 반영된 결과다. 금융권 관계자는 “윤 회장이 전략기획통인 최 전 사장 영입을 위해 정성을 쏟았다”고 전했다. 신한금융의 주주 세력과 대립각을 세우다 실각한 최 전 사장이 신한을 꺾기 위한 최상의 전략을 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KB금융의 속내다. 최 전 사장과 윤 회장은 성균관대 경제학과와 경영학과를 나온 데다 각각 행시 15회 25회로 대학과 행시 선후배 사이인 점도 이번 사외이사 낙점에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 전 부사장과 함께 KB금융 사외이사에 선임된 박재하 아시아개발은행(ADB) 연구소 부소장도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신한은행 사외이사로 재직했으며, 2010년에는 신한은행 이사회 의장까지 맡았다. 그는 옛 재경경제부 장관 자문관을 지내 정부정책에도 해박하다는 평을 듣는다. 한 금융권 인사는 “보수적인 국내 은행권 문화에서 최대 경쟁업체의 CEO와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것은 일종의 파격”이라고 평가했다.

새 사외이사에는 다른 라이벌 금융그룹의 최고 경영진이나 사외이사 출신들도 포함돼 눈길을 끈다. 김유니스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2008년 하나금융지주가 국내 지주사 가운데 처음으로 신설한 준법감시 담당 부사장을 맡아 2010년까지 재직했다.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2002년 한국은행 금통위원을 지낸 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를 맡았다.

이병남 LG 인화원 원장은 1995년부터 LG그룹 인사 담당 부사장,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자문위원, 중앙노동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거치며 LG그룹의 인사 및 교육을 맡고 있다. 한종수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는 윤 회장이 근무한 삼일회계법인 회계사 출신이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회계학 박사학위를 땄다.

이 가운데 김 교수와 이 원장, 박 부소장은 KB금융이 국내 금융권 최초로 실시한 ‘사외이사 예비후보 주주제안’ 제도에 따라 선정됐다. KB금융은 지난달 이사회 의결을 거쳐 모든 주주에게 사외이사 예비후보 제안권을 부여했다. 국내 금융사에 상당한 지분을 가진 글로벌 금융그룹 등에서 사외이사를 파견하는 일은 있었으나 개인투자자를 비롯한 모든 주주들에게서 제안을 받아 사외이사를 선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과 함께 사외이사 최종 후보로 선정됐던 김중회 전 KB금융지주 사장은 스스로 후보에서 물러났다. 김 전 사장은 비슷한 시기에 사외이사직을 제안했던 다른 회사로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융권에선 금융 당국이 금융감독원 부원장 출신인 김 전 사장을 기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이후 논란이 일자 스스로 후보에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했다는 분석이다. 김 전 사장을 제외한 6명은 오는 27일 이사회와 3월말 주주총회를 거친 뒤 사외이사로 취임하게 된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