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학자들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역사교과서 위안부 관련 수정 압력에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이 소동은 한·일 양국 간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얼마나 지난할 것인지 가늠케 한다. 그 이유는 ‘역사수정주의자’인 아베 총리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주 요인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한국과 중국을 자극하고, 난징 학살의 부정은 중국, 위안부 문제는 한국만의 반발을 초래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에는 정당한 전쟁이었으며 성스러운 전쟁이었다는 ‘보수 우익’의 주장은 미국이 확립해온 전후의 정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입장이며, 미국이 결코 용서해줄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보수 우익’의 역사관 형성에 미국의 책임도 없지 않다. 독일의 역사인식과 확연히 대비되는 일본 ‘보수 우익’의 왜곡된 역사인식은 냉전의 발발로 인해 침략전쟁의 책임에 대한 인적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A급 전범 용의자로 3년간 감옥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던 기시 노부스케를 미군정이 복권시켜 총리에 오르게 한 것이다. 가장 존경하는 정치적 스승이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인 아베 총리에게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다는 이유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보수·우익 형성에 미국의 책임 적지 않아
한·일 관계의 현 상황은 지도자 레벨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아베 총리를 장기간 그 자리에 있게 한 국내외의 구조적 요인이 배경이다. 첫째, 일본 국내 정치구조의 문제다.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이 의미하는 바는 ‘요시다 독트린’에서의 탈피다. 전후 냉전기간 동안 일본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하여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는데, 이러한 전후의 ‘성공적인’ 일본 외교를 설명하는 통설로서 회자되어 온 것이 ‘요시다 독트린’론이다. 일본의 발전은 헌법 개정을 통한 재군비를 종용하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한 요시다가 안전 보장은 미국에 의지함으로써 방위비를 낮은 수준으로 억제하고, 오로지 경제면에서 국익을 추구한 정책적 선택에 의해 가능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요시다 독트린’론은 본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서 ‘보수 우익’으로부터 끊임없는 비판을 받아왔다. 첫째, 주권의 손상이다.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는 것으로 인해 주권이 심하게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 ‘보수 우익’이 견딜 수 없는 굴욕으로 받아들이고 헌법 9조의 개정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다. 둘째, 오키나와 기지 문제다. 일본 면적의 0.6%인 오키나와에 전체 미군기지의 74%가 밀집돼 있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지 문제가 특히 냉전이 끝난 후 심각하게 누적되어 왔다. ‘보수 우익’들에게 ‘요시다 독트린’의 폐해는 필히 탈피해야만 할 ‘전후 레짐’인 것이며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헌법 개정이다.
또 다른 구조적 요인은 동아시아 국제 시스템의 큰 변동이다. 아베 총리가 주변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헌법 해석 변경을 단행한 것은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한 것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점령정책을 일본을 냉전 하에 있어서 군사동맹 대상으로 하는 ‘역코스’ 방침으로 변경한 이래 전쟁의 책임을 물어야 할 보수 세력에 대해, 그들이 소련에 대항하는 군사동맹을 지지하는 한 오히려 지원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역내 변동도 한 요인
21세기 중국의 급부상으로 인해 미·중 관계에서 나타나는 ‘신냉전’ 대응책으로 미국은 아베 총리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퇴행적인 역사인식을 용인하는 것으로 오인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 교수의 “아베정권은 안보 분야에서 미국을 돕고 미국은 일본이 원하는 것을 용인하는 매우 위험한 거래가 있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명찬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한반도포커스-이명찬] 日 역사수정주의의 구조적 요인
입력 2015-02-16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