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1546∼1615)이 지은 ‘동의보감(1613)’은 명성이 무척 높다. 외국에서 가장 널리 인쇄된 책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중국에서는 현재까지 무려 30차례 넘게 인쇄됐는데 이는 우리나라보다 3배 이상 많은 기록이라고 한다.
1763년 중국에서 처음 나온 ‘동의보감’에는 어능이라는 사람의 극찬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조선의 허준이 썼다. 여류 시인 허난설헌과 같은 집안사람이다. 동의보감은 온 나라 최고라는 것을 인정받았지만 황실 도서관에만 간직돼 있어 세상 사람들이 엿보기 어려웠다. 천하의 보배는 마땅히 천하가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동의보감’이 세계적인 의학서로 인정받은 건 중국과 조선을 아우르며 동아시아 의학의 핵심을 집어냈기 때문이었다.
‘동의보감’은 국내에서도 최고 의학서로 손꼽혔다.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과 더불어 사가시인(四家詩人)으로 이름을 날린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이율곡의 ‘성학집요’, 유형원의 ‘반계수록’과 함께 ‘동의보감’을 조선 최고의 책 세 권으로 꼽았다. 그는 ‘동의보감’을 소개하면서 “사람들이 의학을 업신여기면서 시문 짓기만 일삼고 있다. 참 한심한 일이다”라고 적기도 했다.
방한 중국인이 많아지면서 엉터리 여행 가이드가 판 치고 있다고 한다. 중국어 관광안내원의 80%가 중국 국적자인데 이들은 ‘허준이 장금의 스승’이라거나 ‘동의보감은 중국 의학서의 번역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장금은 중종 때 사람으로 허준보다 최소한 40년 이상 출생이 빠르다.
우리 드라마 영향도 있다. 비록 허구라고는 밝혔지만 드라마에서는 스승 유의태가 죽으면서 허준에게 해부를 당부하고, 허준은 해부로 유의태의 위암을 발견한다. 근데 유의태는 허준보다 100년 이상 후세 사람이고 허준은 해부와 거리가 먼 한의학자였다. 천하의 보배라는 찬사까지 받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우리 스스로 갉아먹는 일이 없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김상기 차장 kitting@kmib.co.kr
[한마당-김상기] 천하의 보배
입력 2015-02-16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