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군 문백면의 한 시골마을에 지난 14일 웃음꽃이 활짝 폈다. 주민 고제국(53)씨가 베트남 출신 아내 김유미(49·본명 웬티리엔)씨를 위해 집 마당에서 돼지를 잡고 잔치를 열었다. 고씨는 명절을 앞두고 아내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고 싶었다. 떡국 대신 찹쌀에 콩과 돼지고기를 넣어 찐 베트남 전통 떡을 먹으면서 베트남 설 문화를 즐겼다.
김씨는 한국에서 17년째 설을 맞이한다. 이제 설에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일을 맡아서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명절이 되면 고향 생각이 나는 건 여전하다.
김씨는 “설이 다가올 때마다 부모님과 고향이 너무 그리웠는데 오늘은 마치 베트남에 온 것 같다”며 기뻐했다. 초대받은 이주 여성과 이주 노동자들도 명절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고씨 부부는 소문난 잉꼬부부다.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면서 백년해로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베트남 중부지방 하띤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했던 김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1997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 진천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인근 공장에서 일하던 고씨는 김씨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고씨는 취업비자가 만료돼 한국을 떠나야 했던 김씨를 붙잡아 98년 4월 서둘러 혼인신고를 했다. 김씨는 결혼을 하면서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베트남 이름을 내려놓고 ‘진천 김씨’의 시조가 된 것이다. 고씨의 아내가 된 김씨는 출국해 4개월 간 가족들과 지내며 베트남에서의 생활을 정리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그해 9월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에게는 베트남에 두고 온 어린 딸이 있었다. 사별한 베트남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로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오면서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둔 상태였다. 연애시절부터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고씨는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2007년 한국으로 불러 들였다.
딸은 2010년 7월 한국 국적을 취득해 고아라(28)로 이름을 바꿨고 이듬해 진천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의 웬만치엔(31)과 결혼했다. 고씨는 가슴으로 낳은 딸을 위해 자신이 살던 집을 기꺼이 내줬고 자신은 인근 창고로 사용하던 조립식 건물로 이사를 갔다.
김씨는 “한국을 떠나야 돼 걱정스러웠는데 자상한 남편이 붙잡아줬다”며 “베트남에 있던 딸까지 사랑해줘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또 “함께하는 가족이 있어 외롭지 않고 사랑하는 남편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고씨 부부는 베트남 남자와 결혼한 큰 딸, 사춘기에 접어든 두 딸, 중학생이 되는 아들 등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베트남 사위와 5살 손녀까지 3대가 모여 사는 다문화 가족이 됐다. 베트남 사위도 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손녀는 베트남어보다 한국어를 더 잘해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할 정도다.
고씨는 비닐하우스 27동에서 수박, 방울토마토, 가지, 시금치 등 시설재배 작물과 1만6500㎡ 규모의 벼농사를 하고 있다. 고씨는 트랙터 등 농기계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둘째딸을 보면 흐뭇하다. 둘째딸은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해 농사를 제대로 배울 생각이다.
고씨는 “행복한 가족을 선물해준 아내가 고맙다. 이번 설에 베트남 처가에 인사를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나에게 가족은 행복 그 자체이고 가장 소중한 것도 바로 가족”이라며 “올해는 우리 가족 모두가 더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진천=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
베트남댁 고향 생각 날라∼ 한바탕 동네잔치가 열렸네!
입력 2015-02-17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