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회비 모자라면 더 내든 덜 쓰든 해야

입력 2015-02-16 02:54
‘길어봤자 49일’이란 일본속담이 있다. 아무리 세간을 달궜던 화제라도 49일이면 잊혀진다는 뜻이다. 대중의 관심이란 처음엔 폭발할 듯 들끓다가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식기 마련이다. 대중을 냄비근성이라고 폄하하는 이유다.

다이내믹 코리아를 자랑(?)하는 한국에서는 어쩌면 7주는 고사하고 한두 주가 고작이 아닌가 싶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를 둘러싸고 여야 모두 박근혜정부를 비판하고 차제에 증세든 아니든 복지지출 조정이 필요하다는 등의 주장을 쏟아내더니 지난주부턴 온통 이완구 총리 후보가 화젯거리다.

총리 후보 문제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복지의 지속 가능성은 더 중요하다. 이미 한국사회는 선진국들이 그랬듯 성장의 시대에서 복지 지출 수혜를 중시하는 분배의 시대로 들어섰기 때문에 복지 확대와 지속 가능성의 문제는 그 어떤 의제보다 우선한다.

그런데 현 정부가 앞세웠던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음이 확인된 마당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붙들어두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다른 사연들처럼 쉽게 잊혀지거나 관심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서는 안 된다. 본란에서 거듭 이를 거론하는 까닭이다.

현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전문가들의 면밀한 점검이다. 증세를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따져봐야 한다. 동창회나 동호회 모임에서도 목표를 세워 살림을 꾸리다가 경비가 부족하게 되면 회비를 더 내든가 지출을 줄이든가 한다. 한 나라의 복지지출과 재정조달의 불일치가 있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다만 증세냐 복지지출 조정이냐는 공론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가감 없는 이해가 필요하다. 한국사회는 그간 압축성장 과정에서 성장과 더불어 소득을 늘려오는 데 주력했던 만큼 복지지출은 상대적으로 소홀해 왔다. 그 때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에 비해 조세부담률이 낮고 더불어 복지지출도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저부담·저복지’의 모습이다.

지금 당장 ‘고부담·고복지’로 전환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꾸준한 ‘부담 확대, 복지 확대’가 바람직한 방향이다. 문제는 확대되는 부담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에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재정의 근간인 조세 중 기업이 부담하는 법인세와 근로자를 비롯한 국민 개개인이 감당하는 소득세의 흐름이 최근 3년 새 크게 달라졌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그래프 참조).

2009년만 하더라도 법인세와 소득세 규모는 35조원 안팎으로 비슷했으나 지난해는 10조원 이상 차이를 보일 정도로 소득세가 크게 늘었다. 기업들보다 개개인의 세 부담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이명박정부가 2008년 법인세를 25%에서 22%로 낮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한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16%에 불과해 다른 경쟁국과 비교할 때 크게 낮은 수준이다.

법인세 인상에 대해 ‘불경기에 기업에 부담을 지워서는 곤란하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런가. 예컨대 근로소득세는 근로자가 번 돈에서 낸 세금이라서 세금이 늘면 가처분소득이 줄어 소비가 위축된다. 하지만 법인세는 기업 운영과 관련한 제반 비용을 감안한 당기순익에 대해 부과되기 때문에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 ‘부자증세’, 즉 상위계층에 대한 세율 인상이 세수 확대에 반드시 효과적이지는 않다는 점도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소수에 초점 맞추기보다 세원 확대가 더 낫다.

저출산·고령사회에 걸맞은 조세·복지체계 관련 공론은 이제 더 늦춰선 안 된다. 더 내든 덜 받든 그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