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문재인 대표 ‘이완구 인준’ 관련 제안 논란] 여론조사로 총리 결정?… 정치 실종

입력 2015-02-14 02:35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왼쪽)가 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우윤근 원내대표와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문제를 상의하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13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과 관련해 새누리당에 ‘공동 여론조사’를 제안했다. 여야가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니 적격·부적격 여부를 국민들에게 물어보자는 뜻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어처구니없다” “삼권분립을 흔드는 반민주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여론조사 총리 인준’을 하자는 제1야당 대표의 정치적 상상력이 너무 궁색하다는 비판이다.

문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사퇴) 주장을 정치공세로 여긴다면 중립적이고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에 여야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의뢰하기를 청와대와 여당에 제안한다”며 “우리 당은 그 결과에 승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모처럼 자리 잡아가는 대화와 타협의 의회정치를 부적격 총리 후보와 맞바꿔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단칼에 거부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원내대표단·정책위의장단 연석회의에서 “어제 서로 양보해서 국회의장 중재 하에 어려운 합의를 도출한 게 지금 몇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며 “야당 대표가 하루 만에 이렇게 말씀을 바꾼 데 대해 정말 유감”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에서는 “공무원연금 개혁도 여론조사를 하라”(강석훈 의원), “국무총리를 여론조사로 뽑겠다는 것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발상”(김영우 대변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새누리당은 16일 본회의에서 야당이 불참하더라도 표결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문 대표의 공동 여론조사 제안은 당 지도부 사이에서도 논의되지 않았다. 문 대표가 ‘이완구 딜레마’를 풀기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버티는 이 후보자를 국민 여론으로 압박하겠다는 의도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10∼12일 전국 성인 101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 포인트)를 실시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이 후보자가 총리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41%, 적합하다는 의견은 29%였다.

하지만 당내에서조차 엉뚱한 퇴로를 뚫었다는 지적이 터져나오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역풍이 거세자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부랴부랴 해명했다.

그러나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국무총리를 합의로 선출하지 못해 국민들에게 인준 여부를 묻자는 것으로 해석돼 ‘가볍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의당은 “여론조사 몇 %가 높거나 낮다고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문 대표는 ‘호남총리’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데 이어 ‘총리 여론조사 발언’으로 또 한번 구설에 오르게 됐다.

이 후보자에 대한 인준 과정은 후진적인 여의도 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집권여당 원내대표를 지낸 이 후보자가 보여준 언론관 및 발언 수위는 실망 그 자체였다. 또 새누리당이 21년 만에 국무총리 후보자의 단독 표결처리 기록을 남기려는 모습에서는 협치(協治)보다 힘의 논리가 강하게 배어 나온다. 안타깝게도 여·야·정 어느 한 곳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엄기영 김경택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