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가 궁금하다] 화폐, 국가의 얼굴

입력 2015-02-14 02:53
화폐에는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이 들어간다. 존경받는 지도자나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이들을 도안에 넣는 게 보통이다. 미국 100달러에는 벤저민 프랭클린, 인도 루피아화에는 마하트마 간디, 영국 파운드화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일본 1만엔권은 교육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주인공이며, 중국 위안화와 남아공 랜드화에선 각각 마오쩌둥과 넬슨 만델라를 만날 수 있다(왼쪽부터).
월급날은 직장인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월급통장에 찍힌 숫자들을 바라보며 잠시 회사생활의 고단함을 내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각종 공과금과 보험료 등이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고 카드사에서 신용카드 이용대금까지 퍼가고 나면 손에 현금을 쥐어볼 새도 없이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린다. 월급은 그저 스쳐 지나간다. 결국 손에 들게 되는 건 현금이 아닌 카드다.

① 현금은 NO, 전자금융 OK!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4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결과’를 보면 지갑 속에 들어 있는 평균 현금은 7만7000원이었다. 연령별로 보면 50대가 9만3000원으로 가장 많았고, 20대는 4만6000원으로 가장 적었다. 20대의 지갑이 얇은 이유도 있겠지만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 습관도 한몫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엔 지갑 없이 카드 한 장만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현금을 내면 거스름돈이 생기는 게 귀찮기도 하고, 나중에 소득공제를 받을 때도 편하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도 누구 한 명이 카드로 결제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모바일뱅킹으로 계좌이체를 하는 20, 30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금이 오갈 일이 없다. 정부의 핀테크 강화 바람을 타고 이런 추세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아예 실물이 없는 새로운 화폐도 등장했다.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란 가명의 프로그래머가 개발한 ‘비트코인(Bitcoin·BTC·사진)’은 ‘추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완벽한 화폐’(미국 시사주간 타임) 등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몇 년 전부터 주목받았다. 가장 큰 장점은 2100만BTC까지만 완만하게 공급되도록 설계돼 있어 인플레이션 위험이 없다는 점이다. 암호화된 문제를 풀어 얻거나 주식을 거래하듯 거래소를 통해 구매할 수 있다. 실물 형태는 없어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전자지갑을 통해 결제에 활용할 수 있다. 세계 최대 간편결제 서비스업체인 페이팔에서 카드 등과 동일하게 결제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② 신사임당님, 어디 계세요? 고액권 실종

실물화폐는 사용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가장 선호되는 지불결제 수단이다. 무엇보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화폐도안 모델 선정은 물론 고액화폐 도입 등 화폐 관련 모든 사안은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한국의 최고액권은 2009년부터 발행된 5만원권이다. 1973년 1만원권이 도입된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경제위상에 맞는 고액화폐 보유와 수표 발행비용 절약을 위해 고액권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하지만 물가 상승 등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신중론 속에 2007년에야 10만원권과 5만원권 도입이 결정됐다.

당시 도안 모델로 결정된 인물은 신사임당(5만원권)과 김구(10만원권)다. 두 인물은 모두 선정 전후 수난을 겪었다. 여권운동가들은 현모양처 이미지가 강한 신사임당이 낙점되자 “현대 여성상과 다른 가부장적 성차별”이라며 반발하고 나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음 해엔 10만원 고액권 발행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김구 선생이 그려진 지폐를 영영 만나볼 수 없게 됐다. 물가불안 초래 가능성, 전자화폐 활성화로 고액권이 필요하지 않다는 등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 보수층이 김구가 아닌 박정희나 이승만 대통령을 도안에 넣자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발행이 미뤄졌다는 뒷얘기도 흘러나왔다.

신사임당은 살아남았지만 계속 지하로 숨어들고 있다. 도입 당시 염려했던 지하경제 양성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2년 61.7%였던 5만원권 환수율은 2013년 48.6%에서 지난해 29.7%로 줄었다. 실제 2011년 전북 김제 한 마늘밭에선 불법 인터넷 도박사이트에서 벌어들인 돈 110억원을 5만원짜리 뭉칫돈으로 마늘밭에 숨겼다 발각되기도 했다.

③ ‘0’ 너무 많은 \… 화폐 단위 절하 논란

2003년 당시 한은 박승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화폐액면단위 절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물가가 상승할 수 있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정부가 관련 논의를 공론화하지 않기로 하면서 논의는 수그러들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가치 변동 없이 모든 화폐의 액면을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생각하면 ‘0’의 개수를 줄이는 일이라 볼 수 있다. 한국 경제 관련 통계에 ‘조’를 넘어 ‘경’까지 등장하다보니 리디노미네이션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미국 달러와 비교했을 때 원화는 1000대 1이 넘는 수준이다.

최근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곳은 짐바브웨다. 이곳을 여행한 이들이 자랑삼아 0이 10개가 넘는 ‘고액권 화폐’를 꺼내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살인적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짐바브웨는 2008년 100억 짐바브웨달러(Z$)를 1Z$로 낮췄지만, 계속된 인플레이션에 1조Z$를 1Z$로 변경하며 0을 12개나 또다시 없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우리의 화폐단위가 제일 높다”면서 “필요성은 분명 있는데 워낙 민감하고 잘못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섣불리 시행할 수 없다”며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은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