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서 용 나기 힘든 사회’ 굳어진다

입력 2015-02-14 02:34
11년 전 A씨(27)가 중학교 3학년일 때 아버지의 월급은 100만원이 채 안 됐다. 중학교만 졸업한 아버지는 공사판을 전전하며 가족을 먹여살렸다. 학원이나 과외는 A씨에게 남의 얘기였다. 수능 결과도 썩 좋지 않았다. 언어·수리·외국어 등 3개 영역에서 평균 5등급을 받았다. 그는 경기도의 한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지금은 보험사 출납창구에서 사무원으로 일한다. 지난해 기준 월 평균 급여는 160만원이다.

같은 나이인 B씨의 아버지는 11년 전 매달 300만원 조금 넘게 돈을 벌어왔다. 아버지는 4년제 명문대를 졸업한 공무원이었다. B씨는 학창시절 과외를 받고 학원도 다녔다. 수능 성적은 평균 1.6등급. 서울의 한 명문대 교육학과에 진학했고 지금은 교사가 됐다. 그는 수당을 포함해 매달 313만원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의 사례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04년부터 전국 학생 6000명(중3, 일반고3, 전문계고3 각 2000명)의 삶을 해마다 추적하고 있는 한국교육고용패널(KEEP) 조사의 일부다. 부모의 학력과 소득 수준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시스템이 고착화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인식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와 최필선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는 KEEP 조사를 활용한 논문 ‘한국의 세대 간 사회계층 이동성에 관한 연구’를 작성했다. 13일 서울대에서 열린 ‘제10회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에서 이를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중학교 3학년(2004년) 당시 많이 배우고 돈 잘 버는 부모를 둔 사람은 10년 뒤인 2014년 직장을 가졌을 때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월급이 더 많았다. 중졸·초졸 부모의 자녀는 월평균 145만원을 받았지만 대졸 이상 부모를 둔 자녀는 179만원을 받고 있었다. 부모 소득이 하위 20%인 집안의 자녀는 162만원, 상위 20%인 집안의 자녀는 193만원을 매달 버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 진학에서는 부모의 학력이 고졸 미만이면 자녀의 26.1%만 4년제 대학에 갔다. 대졸 이상의 부모를 둔 경우에는 78.5%가 4년제에 진학했다. 소득 하위 20% 부모를 둔 고3 학생은 30.4%만 4년제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고교 내신성적에도 부모의 학력과 소득이 영향을 미쳤다. 부모가 고졸 미만인 학생의 내신 1등급 비율은 3.3%에 그쳤다. 부모가 대졸 이상인 학생은 1등급 비율이 16.2%로 5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부모 소득이 상위 20%인 학생은 12.6%가 1등급을, 하위 20%인 학생은 4.1%가 1등급을 받았다.

고교 진학에서는 부모의 학력이 고졸 미만인 경우 중3 학생의 54.4%가 일반고에, 44.4%가 실업고에 갔다. 부모가 대졸 이상이면 자녀의 일반고 진학률은 88.0%까지 올라갔고 실업고 진학률은 11.6%로 떨어졌다. 부모 소득을 기준으로 했을 때도 하위 20%의 부모를 둔 중3 학생은 51%가 일반고에, 47.5%가 실업고에 진학했다.

민 교수는 대물림 문제의 원인과 해법으로 ‘교육’을 들었다. 그는 “자녀의 교육에 대한 투자가 다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달라지는 것”이라며 “사회계층의 세습화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학력·소득 계층별로 교육 투자와 이에 따른 성과를 고르게 하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