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가 자신을 부리는 양반집 마님에게 땅콩을 내밀었다. 지난해 12월 5일에 있었던 일이다. 땅콩을 접시에 담지 않고 봉지째 내놓자 마님은 열이 올라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급기야는 가마를 되돌려 노비를 관리하던 노비장(長)을 돌려보냈다. 사흘 뒤 마님의 횡포는 벽서(壁書)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관청에서 조사에 나섰지만 관료들은 이미 양반집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노비장은 쉴 새 없이 쟁기질을 해야 하는 곳으로 유배됐다.
노비제도는 1894년 철폐됐지만 2015년 대한민국엔 여전히 노비들이 살고 있다. 정규직 노비 1200만명과 비정규직 노비 600만명. 난 6년차 정규직 노비다. 2013년 9월, 노비 3명과 함께 마포의 한 음식점에서 회동했다. 모둠전 한 접시와 국밥 한 그릇씩을 주문했다. 20대 후반의 여성 노비는 국밥을 두 손으로 사발째 들고 사약처럼 들이켰다.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쑤셔넣던 이들은 대충 배를 채운 뒤 저마다 신세한탄을 했다. 어떤 노비는 수당도 없이 매일 야근과 주말근무에 시달렸고, 다른 노비는 쥐꼬리만한 월급에 생계가 어렵다고 했다. 아, 노비 신세여.
우린 난을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일종의 노비해방운동이다. 모임 이름을 ‘망이·망소이’로 정했고, 세를 규합하기로 했다. 역사적인 그날이 오면 해방선언문을 쓸 사람까지 정했다. 신분제도의 올가미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2015년 2월, 우리가 결의를 다진 날로부터 1년5개월이 지났지만 우린 여전히 각자의 회사에서 지게를 지거나 쟁기질을 하고 있다. 애초부터 무력한 존재였다. 고려 무신정권 당시 망이·망소이나, 최충헌의 노비였던 만적이 그랬던 것처럼 신분 해방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노비는 아니었다. 직장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 천한 자가 됐다. ‘노예 12년’의 저자 솔로몬 노섭도 서른 살에 노비가 됐다. 그는 1841년 노예 상인에게 납치돼 노비가 됐고, 우린 직장에 납치돼 노비가 됐다. 노예폐지 운동가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12년간 노예생활을 이어간 노섭에 대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알고 아버지와 남편으로 불렸던 서른 살의 남자가 어느 날 노새나 말 같은 소유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1800만 근로자들은 지금도 이 같은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노비 신세로 살면서도 혹시 주인양반이 다른 집으로 내쫓진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약하고 서글픈 존재다. 노비의 목줄을 단단히 쥐고 있는 양반들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탈출을 꿈꾸지만 추노당할 일을 생각하면 이내 단념하게 된다. 노비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복수는 기껏해야 ‘너무 열심히 쟁기질을 하지 않겠다’ 뭐, 이 정도였다.
정부는 1200만 정규직 노비들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했다. 듣는 노비들은 분통이 터졌다. 물론 행복한 노비들도 있다. 주인양반이 워낙 잘살고(대기업), 노비들의 애환도 들어주고(노조), 다른 집으로 내쫓을 일도 없는(정규직) 집에 사는 노비들이 130만명 정도 된다. 세상에선 이들을 ‘귀족노비’라고 부른다.
대체적으로 노비는 태어날 때부터 노비고, 양반은 태어날 때부터 양반이다. 이 때문에 양반들은 그들이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늘 그래왔기 때문에. 채찍은 노비의 등을 후려치라고 있는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양반의 삶을 살았던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김치찌개 정도로 기자들을 주무르려 한 것이 어쩌면 그렇게 허무맹랑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관습과 사회의 영향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견해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바로 세금 문제다. 옛날 조선시대 노비들은 납세의 의무에서 비켜나 있었다. 노비를 인간이 아니라 물건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가 재정은 파탄 위기에 놓였고, 정부는 노비 수를 줄이고 양인을 늘리는 정책을 시도했다. 2015년 대한민국은 다르다. ‘증세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곳간이 비어가니 노비부터 찾는다. 이번 연말정산에서도 정부는 나를 찾았다. 꽁꽁 숨고 싶었는데 들켜버렸다. 이럴 때만큼은 물건으로 취급해줘도 좋으련만. 아무튼.
노섭이 노비생활을 청산할 수 있게 도와줬던 베스는 이런 얘기를 했다. “노예제도란 게 정당한 건 아니잖습니까, 당신은 자랑인 듯 말씀하시는군요.” 적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팔려나가는 근로자들의 노동력,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지만 사실 이게 정당한 건 아니다.
이용상 경제부 기자 sotong203@kmib.co.kr
[창-이용상] 노비들이 사는 세상
입력 2015-02-14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