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칼럼]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입력 2015-02-14 02:19

이사를 해보면 버릴 것들이 많이 나온다.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버리게 된다. 사람들에게는 버려지는 것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은 버려지는 것이 없다. 낙엽은 내버려두면 썩어서 땅의 거름이 된다. 겨울철 눈도 녹으면 생수로 변화될 수 있다. 사람이 만든 것은 썩지 않아 오염물질로 변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은 썩어져 새로운 재생 효과를 만든다. 하나님은 버릴 것이 없도록 일하시는 분이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 6:12) 이 말씀은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위대함은 오병이어 기적보다도 이 말씀에서 더욱 밝게 드러난다.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르쳐주신다.

첫째, 배부름으로 인해 영적 긴장감이 버려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사람들이 원대로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런데 그들이 배불리 먹고 나자 영적 긴장감이 없어져 남은 조각들을 하찮게 여기게 됐다. 성경은 배부름의 영적 위험에 대해 여러 번 경고하고 있다(신 6:11∼13, 호 13:5∼6).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게 된 원인이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해져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때때로 우리의 간절한 열망이 신앙이 아니라 불신앙의 열망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돌보고 채워주신다. 그러나 배부름을 추구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우상숭배이다.

둘째, 기적 속에서 현실 감각이 버려지지 않게 하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기적으로 만드신 빵은 잠시 사람들에게 배부름을 주고 없어지는 환상의 빵이 아니다. 주워 담아 보관할 수 있는 현실의 빵이었다. 오래두면 썩는 빵이었다. 기적의 빵은 자연법칙에 따르는 빵이었다. 우리들은 기적이 자연법칙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적은 자연법칙을 깨뜨리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남은 조각을 거두게 하신 것은 기적이 자연의 영역에 들어오는 순간 자연의 법칙에 순종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C S 루이스는 ‘기적’이라는 그의 책에서 기적의 결과가 자연법칙을 따라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한 처녀의 몸에 기적으로 생명을 잉태하게 하셨지만 예수님은 임신이라는 과정을 통해 출생하셨다. 기적으로 만들어진 빵도 먹으면 몸속에서 소화 과정을 거친다. 진정한 기적은 기적 발생 이후 자연법칙을 따라 변화된다. 기적과 자연은 충돌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기적이 가져다주는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하셨다. 다시 자연과 현실로 돌아오도록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기적으로 주신 선물이 하나도 낭비되지 않게 하셨다. 기적을 통해 얻어진 것이 버려진다면 그것은 사람을 타락하게 만드는 기적이다. 진정한 기적이 될 수 없다.

셋째, 남은 조각의 가능성이 버려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배부른 사람들이 남은 조각을 버리기 시작했을 때 모아보니 12광주리나 되었다. 배고플 때는 단 한 광주리만 있어도 감사했을 터인데 배부르고 나니 12광주리가 버려져도 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참된 신앙은 배부름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남은 조각의 가능성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남은 조각만 모아서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보낸다면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생활 속에서 배부르기 때문에 버리는 게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남은 조각의 가능성을 버리는 것이다. 내가 버릴 수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기적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남은 인생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주셨다. 오병이어로 수천 명을 먹이신 하나님이라면 12광주리로는 얼마나 큰 기적과 축복을 만들어주실 수 있겠는가. 참된 신앙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 속에 버려지는 것이 없게 하는 삶이다.이재훈(온누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