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분 밥… 우유에 인디안밥… 양념고추장… 언니들의 ‘특식’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입력 2015-02-13 03:13

반성문에는 조 전 부사장의 감방 생활을 엿볼 수 대목이 담겨 있었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구치소에 입소할 때 그에게 주어진 것은 작은 박스에 담긴 두루마리 휴지, 플라스틱 수저, 그릇, 비누, 칫솔, 치약뿐이었다. 그리고 내의와 속옷, 양말 두 켤레가 자신이 가진 전부였다고 했다. 구치소에서 생필품 사는 날짜는 정해져 있는 데다 연초(年初)여서 공급자 변경 문제로 물품 구매조차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럴 때 ‘스킨과 로션’ ‘샴푸와 린스’를 선뜻 빌려준 재소자들이 고마웠다는 것이다.

식사 시간에는 그들과 나름대로 ‘특식’을 만들어 먹었다고 소개했다. “4인분의 밥과 국, 찬이 들어오면 저희 방 입소자들은 가끔 특식을 만들어 먹습니다. 인디안밥(과자)에 우유를 먹는 간단한 아침부터, 주먹밥이나 비빔면 등 제법 공 들인 메뉴까지…. 여러 근심에 제 말수가 적어지니 저보다 12살 많은 입소자 언니가 고추장에 이것저것 넣어 양념고추장을 만들어줬습니다. 밥이든 면이든 비벼먹으면 한 끼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넘어갈 맛이라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다 나왔던 것 같습니다.”

풍족한 삶을 살았던 조 전 부사장은 이런 생활에서 배려를 배웠다고 썼다. 그는 “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화통한 상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제 타인에게 정을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나중에라도 대한항공에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말도 했다. “이번 사건이 제 인간적 부분과 관련돼 있고 언론이 저를 미워하므로 제가 대한항공과 더 이상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재판부가 반성문을 읽는 내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오 판사는 “반성문을 보면 죄를 뉘우치는 걸로 보인다”고 했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이 매우 크고 그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해 실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의 5가지 혐의 중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 안전운행저해폭행과 형법상 업무방해, 강요 등 4가지를 유죄로 판단했다. 승무원들에게 국토교통부 조사에서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만 무죄로 판결했다.

국내에서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 혐의가 인정되기는 처음이다. 앞선 공판에서 변호인과 검찰은 ‘항로’의 개념을 두고 법리다툼을 벌였다. 변호인은 “지상로를 항로에 포함하는 검찰 주장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항로의 사전적 의미는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로(空路)’지만 관련 법률상 항로는 명확한 정의가 없어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륙 전부터 착륙 후까지’를 항로로 봤다. 램프 부근 지상을 이동 중인 항공기를 게이트로 돌아가게 한 행위도 항로변경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는 “국토부가 사건 실체를 밝혀내지 못한 건 감독관들의 불충분한 조사 때문”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여모(58) 대한항공 여객승무본부 상무에게는 징역 8개월의 실형, 김모(55) 국토교통부 항공안전감독관에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