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아닌 ‘악플’로 이야기한 부장판사

입력 2015-02-13 02:54
수원지법 A부장판사(46)가 2008년부터 최근까지 인터넷 공간에 ‘악성 댓글’을 수천건이나 게재한 사실이 드러나자 비난 여론이 커지고 있다. A판사는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에 5개의 ID를 활용, 특정 지역을 비하하고 독재정권 치하의 재판을 옹호하는 식으로 댓글을 남겼다. A판사의 댓글 상당수는 그간 사법부가 판결을 통해 인정해 온 ‘표현의 자유’ 범위를 벗어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2일 수도권의 한 판사는 A판사의 댓글을 두고 “표현 수위로 볼 때 모욕죄 등이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A판사는 ‘촛불폭도’ ‘빨갱이’ ‘저능아’ 등의 용어를 동원해 특정 지역과 집단 등을 비난했다. 그는 “촛불폭도들은 쇠망치로 박살내고 싶다” “박통, 전통 시절에 물고문, 전기고문 했던 게 역시 좋았던 듯”이라고도 썼다.

법원은 악성 댓글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표현의 자유를 아무 때나 들이댈 수 없다고 누차 설명해 왔다. 2004년 대전의 한 무직자는 “통일의 꽃 임수경씨 9살 아들 필리핀서 익사”라는 인터넷 기사에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라는 댓글을 남겼다가 벌금 7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댓글 자체만으로는 가치중립적 표현”이라면서도 “기사와 연결해 살펴보면 피해자 인격을 경멸하는 가치판단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사법부는 사이버 공간에 남겨진 악성 글의 피해를 ‘1시간에 5만원’으로 계량화한 상태다. 서울중앙지법은 2013년 인터넷 언론사 기자 이모씨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운영자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게재 및 모욕 게시물 방치 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일베 운영자는 6개월간 이씨가 삭제를 요청하는 게시글과 댓글을 그 요청을 받은 시각으로부터 2시간 이내에 삭제해야 한다”며 “‘위반행위 지속 시간’이 1시간 경과할 때마다 5만원씩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당시 삭제 대상으로 언급된 명예훼손 표현은 ‘전라디언’ ‘홍어’ ‘좌좀’ ‘좌빨’ 등이었다. A판사 역시 ‘전라디언’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A판사는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대법원 윤리감사실은 댓글 작성 경위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이경원 정현수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