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직격 인터뷰] 노석철 사회2부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다

입력 2015-02-13 02:36
박원순 서울시장이 12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 시장은 “2000년 역사를 가진 고도(古都) 서울은 도성 전체가 박물관이고 관광자원이기 때문에 역사·문화 콘텐츠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성찬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치에 대해선 조심스럽게 피해가고, 행정에 대해선 단호하게 얘기했다. 무상복지와 증세 논란, 자신의 대권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의도적으로 ‘동문서답’을 했다. 정치권의 논쟁에 쓸데없이 휘말리지 않겠다는 식의 답변 매뉴얼을 정해놓은 듯했다. 문화와 역사 쪽으로 화제를 돌리자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시장실 내부의 책장을 가득 채운 파일들을 꺼내 보이며 ‘서울 도성’ 복원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설명했다. 시간이 부족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답이 뻔한 정치보다는 문화 쪽에 질문 포커스를 맞출 걸 잘못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박 시장을 12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만났다.



-정치권에서 무상복지와 증세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데 어떻게 보나.

“우리가 과거보다 복지예산이 많이 늘어났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입장에서 보면 꼴찌다. 복지는 낭비가 아니라 사람과 미래에 대한 투자다. 문제는 재원인데 서울시는 빠듯하지만 행정의 혁신과 효율화를 통해 지난 3년간 채무만 7조2800억원을 줄였다. 지하철 9호선도 3조2000억원 정도 시민 부담을 줄였다. 공공 이 최선을 다해 혁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증세는 시민을 설득하고 공론을 모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이 사회적 공론화의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돈이 없으니 직장인과 서민 지갑만 짜내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는데.

“지방정부는 재정의 어려움이 엄청 가중되고 있다. 중앙정부는 여지가 많은데 지방정부는 새롭게 해볼 도리가 없다. 국가사무와 위임사무를 따지면 업무는 지방정부가 6, 중앙정부가 4를 하고 있는데 재정은 반대로 2대 8이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6까지는 아니어도 3대 7 정도만 바꿔줘도 26조원 정도가 지방정부로 가게 된다. 그러면 일을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재정의 지방분권은 국가의 경쟁력을 위해 굉장히 중요하다.”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에 115층 빌딩을 짓겠다는데, 밑그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현대차의 제안을 여러 가지 사정 고려해 결정하게 된다. 위원들은 내가 임명하지만 결정은 맘대로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 지역이 워낙 금싸라기 땅이고 국제교류복합지구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서울시의 여러 목표와 계획에도 맞아야 된다. 코엑스의 전시공간만으로는 서울시가 미래에 도약하고자 하는 목표에 미달한다. 왜냐하면 마이스(MICE·국제회의·인센티브관광·컨벤션·전시), 이게 관광 중에도 핵심이다. 서울시가 세계 5위에서 4위가 됐고 목표는 3위다. 1등인 싱가포르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프라가 똑같기 때문이다. 현대차 부지나 서울의료원 부지, 탄천을 넘어서 스포츠 콤플렉스에도 일부 호텔이나 쇼핑센터가 들어설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게 되면 싱가포르를 따라잡을 수 있다. 현대차의 목적도 물론 잘 달성될 수 있도록 하면 좋고, 서울시의 독자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과의 조화가 중요하다.”



-현대차는 가장 높은 초고층 랜드마크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초고층 빌딩으로 경쟁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뉴욕과 경쟁하는데 높은 빌딩이 얼마나 있느냐로 되는 게 아니다. 서울의 경쟁력을 잘 살려가는 게 중요하다. 초고층 빌딩을 절대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도시경쟁력의 목표에 비춰 얼마나 적절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구룡마을 개발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되나. 언뜻 보면 강남구청이 서울시보다 더 힘이 센 것도 같은데.

“서울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이다. 어떻게든 빨리 주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만들어드리는 게 핵심이다. 강남구청이 주민센터를 철거한 것은 부적절했다. 주민과 협의해 원만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관의 장은 갈등을 조정하고 평화적으로 푸는 게 가장 큰 능력이다. 강남구청장과 요즘 악수하고 잘 지낸다. 교황은 Power is absolute service(권력은 절대적 서비스다), 권력은 봉사이지 행사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시장이 (권한은) 더 많지만 오히려 봉사하는 것이다. 자신을 낮추면 뭐든지 해결된다. 진정한 권력은 겸허, 봉사, 낮은 자세, 시민의 눈높이에서 나온다. 권력은 늘 양날의 칼이다.”



-새누리당에서 ‘박원순 시장 검증특위’를 구성했는데, 너무 이른 정치공세란 생각도 든다.

“나에 대한 관심은 감사하다. 나는 박원순 저격특위가 아니라 국민들의 삶을 챙기는 민생특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정치는 국민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불신이 높은 것은 그런 기대와 반대되는 일을 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서울시정 2기의 벽두에 있다. 근거 없이 정략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나도 피곤하고 직원들도 피곤하고 일에 방해가 된다. 서울시를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취임 이후 줄곧 문화와 역사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데, 성과는.

“서울의 미래 경쟁력과 발전은 서울의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다. 뉴욕이나 싱가포르는 근대에 만들어진 도시이지만 서울은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고도(古都)다. 2000년 역사를 가진 도시가 어디 있나. 아름다운 자연도 있다. 사람들이 특별하다. 한국사람들이 가진 재능, 손솜씨를 잘 살려야 한다. (서가 쪽으로 안내해 파일들을 가리키며) 백제 왕도가 700년인가 750년 존재했는데 500년을 서울에 있었다. 서울 도성이 전부 다 박물관이다. 역사와 관련된 게 서촌, 종이로 제일 우수한 한지가 있다. 성균관도 유네스코에 등재할 생각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파괴됐다. 하노이 국자감, 개성 성균관을 종합해서 하려고 한다. 헌책방, 세시풍속, 한옥, 영화산업, 연극 등 아무튼 하나하나를 살펴보려 한다. 역사의 콘텐츠를 쌓아가야 한다.”



-일부 건설 현장에서는 문화재가 나오면 바로 덮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문화재가 나오면 국가가 발굴 비용을 대줘야 하는데 건축주가 대야 한다. 서울시는 문화재가 대충 어디에서 나올지 알고 있다. 최근 공평지구를 다녀왔다. 3000평이 넘는다. 이거는 그냥 안 한다. 문화재청에 맡겨놓을 수가 없더라. 현장을 보존한 상태에서 공사하려고 한다.”



-최근 28억원의 호화 관사 논란이 불거졌는데, 억울하지 않나.

“잘못한 게 없는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것이다. 첫 선거부터 나를 둘러싼 음해가 얼마나 많았나.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겠나. 그것보다 훨씬 좋은 공관(혜화공관)이 있었지 않나. 난 다 양보하고 전세로 들어간 것이다. 관사 논란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내가 논평할 입장이 전혀 아니다. 다만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들로부터 멀리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당내 통합을 해주고, 민생 정치를 해줬으면 좋겠다. 지난번 전당대회에 가보니까 (문재인 대표가) 내 말씀 하시더라. 박원순의 생활정치라고. 정치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시민들의 삶 속에 존재한다.”

노석철 사회2부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