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짓밟은 꿈… 교단에 하루라도 서고 싶다”

입력 2015-02-13 02:59
40년 이상 ‘연좌제’로 고통 받은 안용수 목사가 12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교원복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래쪽은 납치 2개월 전인 1966년 7월 안 목사의 형 안학수 하사(왼쪽)와 막내 삼촌(청룡부대 소속)이 베트남 제1이동외과병원 입구에서 찍은 사진.

“평생을 ‘빨갱이 가족’ ‘연좌제’로 고통 받고 살았습니다. 오는 28일이 한때 몸담았던 교사직 정년이 되는 날이지만 단 하루 만이라도 강단에 다시 서서 아이들을 보고 싶습니다.”

올해 만 62세인 안용수(사진)목사의 목소리에 꺾이지 않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안 목사는 지난 9일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교원복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35년 전 연좌제 때문에 교단을 떠나야 했던 안 목사의 사연은 기구했다. 안 목사의 형 학수씨는 베트남전쟁에 파병돼 1966년 9월 보급품 수령을 위해 호찌민(옛 사이공)에 갔다가 베트콩에게 납치됐다. 형은 북한군에 인계돼 북한으로 끌려갔다. 형의 생사는 비밀에 붙여졌다. 하지만 형은 몇 달 뒤 북한의 대남선전 방송에 출연했다. 67년 4∼5월 책임회피에 급급했던 주 베트남 한국군 지휘부는 엉뚱하게도 형을 불평불만, 동기미상, 돈과 여자 문제로 자진 월북한 것으로 처리했다.

이 때문에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월북자 가족’으로 전락했다. 소위 ‘연좌제의 삶’이었다.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는 학교에서 쫓겨났다. 안 목사는 고등학생 때 정보기관에 끌려가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가족의 동태를 보고하도록 요구받았다. 학업성적이 우수했지만 정보기관의 끈질긴 방해공작으로 서울대 등 대학진학이 제한됐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 2년제 초급대학이던 서울교육대학에 입학한 그는 학생회장에 선출됐고 유신반대시위 계획회의에 참석하는 등 운동권 학생으로 활동했다. 결국 그에게는 빨갱이 동생에 이어 운동권이라는 또 다른 ‘꼬리표’가 붙었다.

75년 3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교직생활 내내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육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 직원과 교장, 학부모의 사직압력에 시달렸다. 강압에 못 이겨 80년 9월 5일 사실상 강제 해직됐다.

의지할 데 없는 그에게 하나님이 손을 내미셨다. 신앙으로 상처를 추슬렀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총신대 종교교육학과 3학년에 편입해 졸업했고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때 정부가 국민화합 차원에서 연좌제 폐지에 이어 해외여행 자유화, 신원조회를 간소화하는 조치를 잇따라 취했다. 그는 83년 여권을 신청·발급받아 이듬해 영국으로 출국했다.

‘고대문헌 해석학’ 분야로 이름이 알려진 애버딘대 신학부에서 수학하고 박사학위를 따러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고문 후유증 등으로 건강이 악화돼 도중 귀국했고 오랜 투병생활(장애 3급)을 해야만 했다.

형이 북에 끌려간 지 43년 만인 2009년 통일부가 진상조사 끝에 형 학수씨를 ‘국군포로’로 인정했다. 마침내 ‘빨갱이 가족’의 굴레를 벗은 안 목사는 “꼭 교단에 다시 서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되새기며 2013년 9월 서울시교육청에 복직신청을 냈다.

시 교육청은 법원판결에 따라 처리하겠다며 그의 복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이후 법원에 교원지위 회복 청구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안 목사가 연좌제로 고초를 겪은 사실은 인정했으나 사직을 결심할 만큼 교장의 강압이 심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의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는 “조희연 교육감이 지난해 면담에서 연말까지 가능한 한 복직문제를 마무리하겠다고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며 약속이행을 촉구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소장 정진우 목사)는 13일 오후 2시 시교육청 앞에서 안 목사의 교원 복직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한 뒤 조 교육감과 면담할 계획이다.

그는 최근 자전적 에세이·실화소설인 ‘은폐와 진실①’(책평화)을 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국가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무고한 개인이 얼마나 형언할 수 없는 피해와 고통을 받는지를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는 현재 베트남전국군포로·납북자가족회 대표, 서울 양재동의 작은 공동체 ‘평화나무교회’ 설교봉사 목사로 섬기고 있다. 신학교육기관 등에서 강의도 맡고 있다. 한국교회에 ‘고대문헌 해석학’을 보급하기 위해 ‘석의·강해연구원’ 설립을 준비 중이다.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