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알지? 거기 보내줄게.”
고교 1학년 때부터 서울 강남의 미용학원에 다닌 윤모(20·여)씨는 학원비로 3년간 3000만원을 쏟아부었다. 학원 측은 ‘인(in) 서울’ 대학의 미용 관련 학과에 입학시켜 주겠다며 메이크업 네일아트 등 고가의 수업을 듣도록 권유했다. 학원 청소 등 허드렛일도 시켰다.
그 대가로 윤씨는 지난해 서울 A대학 향장뷰티산업학과에 입학했다. 단순히 학원 수강만 했을 뿐인데 A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건 이 학과가 ‘계약학과’여서다. 계약학과는 산업체 근로자 재교육을 위해 업체와 대학이 계약을 맺어 개설하는 학과다. 정원 외로 입학하며 졸업하면 일반 학과와 같은 정규학위를 받게 된다.
학원 측은 지인이 운영하는 ‘네일숍’에 윤씨가 취직한 것처럼 각종 서류를 꾸몄다. 4대 보험에도 위장 가입했다. 보험료는 모두 윤씨가 냈다. 그렇게 ‘산업체 근로자’ 자격으로 A대학에 입학한 것이다. A대학 학과장 등 교수들 역시 이 학원과 짠 사실상의 ‘입시 브로커’였다. 지난해 이런 식으로 이 학과에 부정입학한 학생은 28명이나 됐다.
윤씨는 입학 두 달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수업의 질이 형편없는 데다 계속되는 ‘돈 요구’에 질렸다. 대학 캠퍼스가 아닌 인근 주택을 개조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었다. 제대로 된 강의나 실습 과정도 없었다. 그런데도 매 학기 등록금 400만원을 꼬박꼬박 내야 했다. 윤씨는 12일 “학원 말을 듣지 않으면 대입 추천서를 써주지 않아 순순히 따랐다”며 “대학에 가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고 말했다.
계약학과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미용학원 수강생을 상대로 ‘학위 장사’를 벌여온 대학교수와 학원장 등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수강생 45명을 부정입학시킨 혐의(업무방해)로 미용학원 원장 류모(40·여)씨와 A대 학과장 유모(44·여)씨 등 모두 1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유씨는 2014년 A대학 미용 관련 계약학과의 학과장 지위를 받기로 하고 고교생 28명을 부정입학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동료 교수 정모(42·여)씨와 김모(47·여)씨도 겸임교수와 시간강사 자리를 각각 약속받고 유씨를 도운 혐의다. 류씨 등 3명은 성적 미달 등으로 대학 진학이 어려운 수강생들을 근로자로 둔갑시켜 수도권 대학교에 입학시키며 1억700만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134개 대학에서 1만3000여명이 계약학과에 다니고 있다. 계약학과에 입학하려는 근로자는 4대 보험 가입 증명서와 입학일 3개월 전 시점의 재직증명서만 내면 된다.
경찰은 “학생들은 산업체와의 근로계약 해지가 제적 사유에 해당해 업체와 학원의 무리한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학원은 대학 진학과 무관한 과목을 월 80만∼150만원에 수강토록 하기도 했고, 4대 보험료를 학생들에게 떠넘겼다”고 말했다. 정상적 계약학과라면 산업체에서 등록금의 50%를 부담해야 하지만 이것 역시 학생들이 전액 부담했다. 경찰은 다른 대학 계약학과로도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대학 진학 어려운 수강생 근로자로 둔갑 ‘학위 장사’
입력 2015-02-13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