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발품 끝에… ‘한국 근현대 미술경매史’ 집대성

입력 2015-02-13 02:54
‘한국미술시장사자료집’을 낸 김상엽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은 1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연구 자료로서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편집 없이 시대순으로 영인했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간송 전형필이 경성미술구락부 경매 사상 최고가인 1만5000원(현재 45억원 상당)에 낙찰받은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김지훈 기자, 경인문화사 제공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부와 권력은 일본인이 장악했다. 고려청자를 비롯해 고가의 고미술품은 그들 수중에 들어갔다. 일본인 골동품상들은 1922년 근대적인 미술유통시스템인 경매회사를 서울에 차렸다. 지금의 중구 프린스호텔 자리에 있었던 경성미술구락부다. 해방 전까지 거의 매달 경매가 열렸고 도록까지 발간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의 각종 경매도록과 전시회 도록, 회칙 등이 집대성돼 ‘한국미술시장사자료집’(전 6권·경인문화사)으로 나왔다. 근대미술시장 발전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이 책은 김상엽(52)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이 20여년간 발품을 판 노력의 결정체다.

김 위원을 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났다. 경매도록 중 서화 부분만 엮어 ‘경매된 서화’(2008·시공사)를 낸 적 있는 그는 “제작비 부담 때문에 도자기를 제외했는데 경성미술구락부 거래의 핵심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였다. 이번 책으로 당시 시장의 실체를 온전히 살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으로 수록된 작품만도 3160점, 전체 1만5980점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경성미술구락부를 접수한 조선고미술협회가 해방 이후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경매를 진행했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됐다. 그는 “1991년 석사논문을 쓸 당시 우연히 일제 때 경매도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때 돈으로도 권당 수십만원이라 살 형편은 못 되고 소장처만 파악하고 다녔다”고 했다. 도서관에 없는 자료는 개인 소장자를 수소문하며 채웠다. 연도 표시가 없던 도록을 연대순으로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50권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경성미술구락부 전체 경매도록 중 47권이 수록됐다.

가장 통쾌한 부분은 1936년 11월 22일 실시된 저축은행 은행장을 지낸 모리 고이치(森悟一) 유품 경매다.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국보 제294호)을 31세의 간송 전형필이 일본인 대수장가를 물리치고 거금 1만5000원(현재 45억원 상당)에 낙찰받은 것이다.

경매도록은 컬렉터의 손 바뀜을 알 수 있고 진위 파악 증거로서도 의미가 크다. 궁내부 차관을 지낸 고미야 미호마츠(小宮三保松)의 소장품이었던 ‘청산백운도’는 후일 누군가에 의해 글씨와 인장이 첨가돼 조선 초기 화가 안견의 작품으로 둔갑됐다. 하지만 경매도록을 통해 조맹부 그림으로 출품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위원은 “책이 일본에도 알려졌으면 좋겠다”면서 “경매에 나온 미술품이 대부분 일본에 가 있을 텐데 현 소장자들이 국내에 전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