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 北외화벌이… 혹한서 밤새 일하고 일당 850원

입력 2015-02-13 02:22
해외 외화벌이에 동원됐다 탈북한 북한 근로자들(가운데 얼굴이 가려진 두 명)이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러시아 시베리아와 쿠웨이트에서 겪었던 열악한 근로현실과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유엔 현대판 노예제도 특별보고관’에게 제출될 청원서 표지. 연합뉴스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아침, 얼굴도 미처 씻지 못한 채 작업장으로 향했다. 영하 40∼45도의 혹한에서 이튿날 새벽까지 일했다.”

탈북자 김모씨는 12일 북한인권단체 ‘엔케이(NK)워치’ 주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 해외파견 근로자들의 실태를 고발했다. 김씨는 2000년 러시아 아무르주 북부 틴다에서 3년간 벌목공으로 일하다 당국의 감시를 피해 탈출했다. 김씨는 “(근로자들은) 그야말로 노예였다. 현장 사진이라도 찍어 남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가 전한 북한 근로자들의 삶은 참혹했다. 오전 6시부터 시작된 작업은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휴일은 단 하루도 없었다. 보호장비는커녕 안전교육조차 이뤄지지 않아 사망자가 속출했다. 더욱 고통스러운 건 한겨울 시베리아의 매서운 추위였다. 도로 사정이 열악한 탓에 진흙탕길이 얼어붙는 겨울에만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장 따뜻해봤자 영하 35도였다”며 “하루는 영하 57도까지 떨어졌는데 이날은 나무를 묶은 쇠사슬마저 얼어 끊어질 정도였다”고 전했다.

김씨가 하루 종일 일해서 번 돈은 고작 50루블(약 850원). 인근 작업장에서 일하던 러시아인, 중국인 근로자가 받는 돈의 2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나머지 돈은 현장에서 근로자를 감시하는 간부들을 통해 북한으로 송금됐다. 그나마 손에 들어온 돈도 다시 일부를 떼어 술·담배를 사 간부들에게 뇌물로 바쳐야 했다. 이들에게 자칫 잘못 보이면 본국으로 송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회견장을 찾은 임일씨는 김씨보다 앞선 96년 쿠웨이트로 파견됐다. 사막의 혹서 속에 하루 12시간 넘게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일확천금의 꿈을 찾아 먼 곳까지 왔지만 급여는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임씨는 “처음엔 간부들이 ‘현지 업체에서 돈을 못 받았다’고 잡아떼다가 결국 ‘당에서 돈을 주라는 지시가 없었다’고 말했다”며 “그 말에 아무도 대꾸를 못했다. 당이란 곧 김정일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입국 5개월 만에 작업장을 탈출해 한국대사관을 통해 귀순했다.

안명철 NK워치 대표는 “북한정권은 비자금 조성을 위해 근로자를 해외에 파견해 임금을 착취해 왔다”며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위조달러 제작과 무기수출이 여의치 않자 근로자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NK워치는 해외근로자 출신 탈북자를 인터뷰해 작성한 청원서 13부를 다음 달 ‘유엔 현대판 노예제도 특별보고관’에게 제출할 계획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