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스타 예감] (8) 10대 검객 오상욱

입력 2015-02-13 03:25 수정 2015-02-13 20:02
한국 남자 펜싱 사브르 국가대표 오상욱이 지난 6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검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표팀 최연소이자 한국 사브르 최초의 고등학생 대표선수인 오상욱은 "2018년 아시안게임과 2020년 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르는 것이 꿈"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곽경근 선임기자
겁 없는 10대 검객 오상욱(19·대전 송촌고 졸업·대전대 입학 예정)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제54회 대통령배 전국남녀펜싱선수권대회 16강에서 국제펜싱연맹(FIE) 남자 사브르 세계랭킹 1위인 구본길(26·국민체육진흥공단)을 15대 12로 꺾은 것이다. 차세대 검객의 등장을 알린 ‘대사건’이었다.

“져도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덤볐는데 그만 이겨 버렸어요. (구본길) 형이 졌는데도 화를 내지 않고 제게 잘한다고 격려해 줘서 기뻤습니다.” 지난 6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오상욱은 당시를 회상하며 활짝 웃었다.

오상욱은 내친 김에 지난해 29일 마무리된 2015 펜싱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선배들을 사브르 3위를 차지, 8위에게까지 주어지는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현 대표팀 최연소이자 한국 사브르 최초의 고등학생 대표선수라는 영광도 함께 얻었다.

‘풋내기’ 오상욱은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에서도 대형사고를 쳤다. 지난 2일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열린 펜싱 월드컵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오상욱은 강호들을 연파하며 당당히 3위에 올랐다. 세계 랭킹이 없어 예선을 거쳐야 했던 오상욱은 예선에서 6전 전승을 거두며 돌풍을 예고했다.

본선 64강에서 31세의 베테랑 검객 모이타바 아베디니(이란)를 15대 9로 누른 오상욱은 32강에서 헝가리의 안드라스 사트마리와 접전을 벌인 끝에 15대 14로 신승을 거뒀다. 여세를 몰아 16강에선 이번 시즌 FIE 랭킹 4위를 달리는 알도 몬타노(이탈리아)를 15대 13으로 제압했다. 이어 8강에선 알베르토 펠레그리니(이탈리아)마저 15대 9로 따돌리고 마침내 4강에 진입했다. 그러나 카밀 이브라히모프(22·러시아)에게 10대 15로 패해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당시를 떠올린 오상욱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선을 전승으로 이긴 뒤 3∼4번만 더 이기면 메달을 딸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됐어요. 4강전에서 긴장이 풀어져 패한 게 아직도 아쉽습니다.”

오상욱은 대전 매봉중 1학년이던 2009년 친형 오상민(21·대전대 펜싱부)을 따라 펜싱을 시작했다. 오상욱을 중학교 3학년이던 때부터 지켜봤던 이효근 대표팀 남자 사브르 코치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선수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죠. 아직 기술이 부족하지만 착실하게 실력을 다지면 머지않아 세계무대를 평정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키가 192㎝, 몸무게 84㎏으로 펜싱 선수로서 이상적인 신체조건을 갖춘 것도 큰 장점입니다.”

동의대 펜싱 감독이기도 한 이 코치는 구본길, 오은석, 이라진, 윤지수 등 남녀 현역 국가대표들을 대거 키워낸 지도자이다. 그는 2012년, 2013년 방학 때면 오상욱을 동의대로 데려가 훈련시켰다. 한국 남자 사브르의 세대교체를 위한 작업이었다. 2012 런던올림픽 멤버는 나이 때문에 2020 도쿄올림픽에 나서기 어렵다. 이 코치는 오상욱이 장차 구본길, 김정환(32·국민체육진흥공단·FIE 세계랭킹 3위), 김준호(21·동의대) 등과 함께 한국 남자 사브르를 이끌 것으로 보고 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선 여자 플뢰레와 남자 사브르 단체전이 정식 종목에서 제외된다. 한국에선 사브르 남자 개인전에 2명만 출전할 수 있다. FIE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 2명이 출전권을 가져간다. 오상욱은 올해엔 FIE 세계랭킹(70위)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현실적으로 내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티켓을 따내긴 어려울 것 같아요. 선배들의 세계랭킹이 너무 높거든요. 실력을 키워 2018년 아시안게임과 2020년 도쿄올림픽에선 개인전과 단체전을 휩쓸고 싶습니다.”

오상욱에게 올해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어 봤다. 잠시 뜸을 들인 그는 다부지게 말했다. “하루빨리 기량을 갈고 닦아 국제대회에서 ‘위험 인물’로 찍히고 싶어요.” 그러면서 활짝 웃는데, 아랫입술이 부르터 있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