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43) 누가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는가 - 영국 런던에서

입력 2015-02-14 02:25
영국 런던에서 만난 폴 송 목사(앞줄 오른쪽)와 교회 성도들. 가난한 나그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준 성도들 역시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이었다.

칼바람이 혹독한 무력감을 안겨주는 겨울 길거리에서 오랜 시간 핍소한 몰골로 지쳐 있다거나 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도 곤란해질 것이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답은 몹시도 명확하지만 우리의 반응은 아마도 ‘모호한 거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전거를 페리에 싣고 2011년 12월 영국으로 들어갔다. 예상만큼 추운 날씨와 예상보다 비싼 물가에 휘청거렸지만 영국 교회를 회심과 부흥으로 이끈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흔적을 보고 싶은 나의 꿈을 막을 순 없었다.

존 웨슬리의 불타는 사역들을 둘러보면서 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영적 그로기에 내몰린 시대의 중심에 진실함으로 믿는 자들을 세워 부흥시킨 일들이 오늘날 한국에도 동일하게 필요함을 느꼈다. 하나 존 웨슬리의 거룩한 사역들이 펼쳐진,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이방 나그네였다. 하루하루 잘 곳을 찾아 헤매야 했고, 끼니 역시 거르는 게 다반사였다.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야 한량없었다. 하지만 추위와 배고픔은 그저 젊은 패기로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했지만 응답이 항상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감사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훈련이었다.

“여기서 한 달 더 있어도 됩니다. 마음 편히 쉬었다 가세요.”

며칠 동안 곤경에 처하고 난 뒤 우연히 방문한 한 교회에서 들은 믿기 힘든 대답이었다. 제법 규모 있는 교회들은 예배당 유아실이나 빈 사무실에 머무는 것을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난색을 표했다. 텐트를 치러 도시 외곽으로 나가기엔 런던은 메가 시티였다. 그때 만난 한 남자는 반(半)거지가 된 나를 보자마자 덜컥 밥부터 먹으러 가자며 온화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교회가 사명대로 세워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목회자, 폴 송(Paul Song)이었다.

그가 맡은 곳은 겉보기엔 볼품없는 작은 교회였다. 매일 새벽과 저녁에 예배를 드리는데 적게는 3명, 많게는 7∼8명이 드렸고 주일에는 이보다 조금 더 많은 인원이 모였다.

“영국에 이민자들이 많지요. 우리 교회는 다민족 성도면서도 대부분이 소외계층이에요. 불법체류 중인 흑인 노동자들부터 마약 중독자, 범죄자,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살고 있는 여성과 아이들 등 배경도 다양합니다. 교회가 바로 이런 자들을 위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교도소 사역과 구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그의 집과 교회를 거쳐 간 이들도 많다. 때로는 도와준 이에게 도리어 폭력을 당하거나 물질적 손해를 입은 경우도 있다. 그렇다 해도 도움이 필요해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올 생각이 없는 사람도 설득해서 데려와 먹이고 재우며 함께 예배를 드린다. 길게는 몇 달씩 신세를 지지만, 어느 날 말없이 떠난 이도 적지 않다.

“괜찮아요. 제 사명은 바로 돌봄이 필요한 그런 이웃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이 성령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거예요. 우리 교회에 와서 하나님만 만나면 됩니다. 위기에 처해 있는 인생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꼭 그래야 하고요. 그러기를 기도할 뿐이지요.”

며칠 동안 교회에 기거하며 내내 새벽과 저녁 예배에 참석했다. 낮에는 런던시내를 구경했다. 가난해도 행복한 광야 생활이었다. 나도 하나님께서 폴 송 목사에게 주신 뜻 안에 포함된 한 청년이 되었다. 영국 교회의 영적 침체기를 돌파해 부흥의 불을 지핀 것은 거룩함의 기본으로 돌아가게 한 존 웨슬리의 믿음에 있었다. 그 믿음은 지금도 누군가에게 하나님을 진실하게 만나고 이웃에게 전하는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소리 없이 실천하는 런던 시가지 구석의 어느 낡고 작은 교회처럼.문종성(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