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봉래 (10) 수인번호 66번 살인범 ‘속죄의 66권 성경 필사’

입력 2015-02-13 02:06
2001년 10월, 정수씨는 한 선교회가 모범수를 격려하기 위해 제정한 ‘우남면학상’을 받았다.
정수씨가 작성한 성경 필사본.
정수(가명)를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12월이었다. 살인죄를 저질러 무기수로 감방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죄를 괴로워하며 몇 번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포기했다. 어머니와 아내, 자식이 보고 싶어 차마 목숨을 끊을 수 없다며 하소연했다. 그는 다른 재소자와 달리 뉘우치는 표현을 자주 했다.

“피해자에게 너무나 죄스러울 뿐입니다. 지금 와서 이런 얘기 해봤자 소용없지만 정말 괴롭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너무나도….” 정수는 진심으로 사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반성의 태도를 참작해 항소심 재판부는 그에게 20년형을 선고했다.

일반적으로 20년 이상 장기수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그래서 안 그래도 팍팍한 교도소 생활을 잘못 풀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반면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장기수도 꽤 있다. 모범수 대부분은 그들 생활의 중심에 신앙이 자리하고 있다.

교도소도 규율과 조직이 있는 작은 사회다. 재소자들은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허락하는 범위 속에서 근면과 부지런함으로 일을 하며 보낸다. 이를 통해 속죄의 삶을 사는 것이다. 교도관으로서 나의 일은 그들에게 규율을 부여하고 감시하는 것보다, 그들의 비뚤어지고 엉킨 인생의 실타래를 풀어주기 위해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정수 역시 인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생활했었다.

홍성교도소에 오기 전까지 그에겐 종교가 없었다. 수인(囚人)번호는 66번이었다. 정수는 자신의 번호를 가리키며 “육땡이네요”라며 웃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자네 번호가 성경책 66권과 똑같다는 것을 알 때가 있을 거야”라며 답했었다. 그러던 정수에게 시련도 있었다. 아내에게 이혼 소송장이 날아온 것이다. 재소자들이 교도소 생활 중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 가족관계다. 특히 기혼자인 경우 이혼이나 부모님 상(喪), 아이가 아플 때 가장 어려워한다. 정수는 결국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고 아이는 어머니가 양육을 맡으면서 모든 것을 잊으려 했다.

그가 예수를 영접한 것은 복음가수가 인도하는 찬양 집회에서였다. ‘내가 너를 도우리라’는 가사가 나올 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는 몇 번이고 가사를 되뇌며 입으로 따라 불렀다. 그럴 때 하나님이 자신을 돕는다는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고 했다. 그런 시기에 무기수에서 20년형을 받았고 주님의 인도를 의심치 않았다. 예수를 믿게 된 그는 성경통신대학 과정을 시작해 성경을 공부했고 불교신자였던 어머니까지 전도했다.

하지만 항상 모범수로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주위의 넘치는 온정과 사랑으로 자만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정수는 자주 말썽을 피웠다. 나를 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는데 이를 너무 이용했던 것 같다. 보안과 관계자도 “정수를 위해 전도사님이 거리를 두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교도관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나는 정수에게 교만을 꺾으라고 수차례 주의를 주었고 정수가 제자리를 찾도록 기도했다. 기도 응답은 빨랐다. 어느 날 정수가 성경을 열심히 필사해서 나에게 갖고 와 제본을 부탁했다. 자기 잘못을 뉘우치며 필사했다고 했다. 누구나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 정수의 징역살이도 그랬다. 정수는 이후 다른 교도소로 이감됐다. 그동안 편지 왕래를 했는데 몇 년째 소식이 끊겼다. 봄이 오면 한번 찾아가봐야겠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