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의 소문난 마당발이자 출판평론가인 한기호(56)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 전화를 걸어 왔다. 책을 하나 만들어서 보냈으니 읽어봐 달라는 얘기였다. 보내온 책은 ‘아들이 부모를 간병한다는 것’으로 늙고 병든 부모를 간병하는 중년의 아들 28명의 체험담이다. 히라야마 료라는 일본의 젊은 사회심리학자가 썼다.
독특한 것은 부모를 간병하는 주체를 아들로 한정했다는 것이다. 며느리나 딸도 있는데, 왜 아들의 간병을 다루었을까? 아들 간병은 특별한 것인가?
알고 보니 한 소장이 바로 ‘간병하는 아들’이었다. 그는 치매 초기 증세를 보이는 노모를 집으로 모신 뒤 7년 째 간병 중이다. 그는 “‘돌싱’이 되어 어머님을 모시다보니 형제들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며 “이 책에는 그 마음이 모두 담겨 있다”고 말했다.
간병하는 아들은 실재하지만 그 실태가 제대로 드러난 적은 없다. 일본의 통계를 보면, 아들 간병이 크게 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주요 간병인이 아들인 경우가 1977년 겨우 2.4%에 불과했으나, 2010년 12.0%까지 증가했다. 반면 며느리 간병 비율은 1977년 37.0%에서 2004년 23.3%로 줄었다. 저자는 아들 간병이 느는 이유로 자녀 수 감소, 독신·미혼 인구 증가, 며느리들의 의식 변화 등을 꼽으며 “머지않아 너도나도 ‘간병하는 아들’이라고 말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간병이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지만, 아들이 간병하는 경우엔 더 힘든 부분이 있다. 집안일에 대한 요령이 부족하고, 직장이나 가정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인간관계에서 고립될 수 있고, 그렇다고 주변에 털어놓기도 망설여진다. 저자는 남자라서 힘든 점을 ‘여자인 어머니를 간병한다는 것’ ‘직장에 다니며 간병하는 아들’ ‘간병하는 남편을 보는 아내의 심리적 부담’ ‘장남이 아닌 아들이 간병하는 경우’ 등 여러 각도에서 사실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아내의 헌신이 있어야 간병할 수 있다’ ‘일하지 않으면 간병할 수 없다’ ‘보통 남성처럼 행동하라’ ‘털어놓는 것이 좋다’와 같이 구체적인 조언을 제시하는 한편 간병과 일의 병행이 가능한 제도의 필요성도 언급한다.
저자가 각별히 주목하는 것은 간병이 남성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다. 남자에게 간병은 남자다움의 상실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간병 사실을 숨기거나, 남자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힘들어도 도와달라고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런 심리들을 잘 부각시켰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 도쿄대 명예교수는 이 책을 ‘남자의 마음을 읽는 심리학’으로 평가했다.
이 책은 한 소장이 최근 설립한 시니어 전문 출판사 ‘어른의시간’의 첫 책이다. 노인 전문 출판사의 첫 등장은 의미심장하다. 한 소장은 “분단을 제외하면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모순은 저출산 고령화”라며 “이 문제에 대한 출판의 대응을 모색하기 위해 시니어 전문 출판사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이웃 일본, 부모 돌보는 아들 5배 늘었다는데…
입력 2015-02-13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