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동은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강남구 대치동의 턱밑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와 성공에 대한 욕망이 자식세대에 투영된 게 교육열이다. 잠실동은 말하자면 대치동으로 직행할 능력과 형편은 못되지만 그곳에 도달하고자하는 이글거리는 욕망을 가장 근접하게 대리만족시켜주는 곳이다.
헤드 헌터의 삶을 그린 ‘모던 하트’로 2013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던 정아은(40·사진)씨가 신작 장편 ‘잠실동 사람들’(한겨레출판)을 냈다. 정 작가를 지난 10일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왜 잠실동일까.
그는 “대치동은 그 자체가 교육열의 정점이다. 이면이 없어 문학으로 쓰기에는 재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잠실동은 서민 주거지였던 주공아파트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30층 이상의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그것도 수천세대가 입주한 단지가 4개나 들어선 곳”이라며 “그런데 요즘엔 지방 소도시까지 생뚱맞게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걸 보면 국토 전체가 이렇게 바뀌고 있다”고 했다. 잠실이 상징하는 계층 상승의 욕망과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이 전국적인 현상이라는 얘기다.
소설은 4개 단지 중 하나인 리센츠 아파트가 무대다. 초등학교 2학년 같은 반 아이들을 둔 지환엄마, 해성엄마, 태민엄마 등이 등장한다. 무리한 대출과 친정의 지원까지 받아 입성한 지환엄마, 유학과 직장까지 포기하고 자녀교육에 매달리는 해성엄마 등은 서로 어울리며 학원정보를 공유한다. 아가월드, 튼튼영어도 모자라 필리핀인과 화상통화를 하게하고, 무의식중에도 영어가 스며든다며 잠자는 아이에게 영어 CD를 틀어주는 게 이들이다. 경훈엄마만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며 학원을 안 보낼 뿐이다. 담임이 맘에 안 든다며 등교 거부 운동까지 벌이는 이들 잠실 엄마들….
여러 인물 중 작가의 분신은 누굴까. 이 아파트에 산다는 작가는 “제 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모습을 여러 주부의 외피를 빌려 이미지화했을 뿐”이라고 했다. 어느 날은 극성 엄마가 됐다가, 또 어느 날은 아이 땐 뛰노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등 여러 엄마의 모습이 작가 속에 들어있다는 얘기다.
소설에는 이들 엄마들의 이상교육열을 먹고 사는 과외교사, 원어민 강사, 어학원 상담원 등도 등장한다. 가장 아프게 와 닿는 인물은 과외교사 김승필이다. K대 지방분교 출신인 그는 아내와 함께 동시통역원 시험을 준비했다. 아내는 성공했고, 그는 실패했다. 그 ‘증(證)’ 하나가 한국사회에서 가지는 위력은 컸다. 이제 이혼한 아내는 뉴스에 외무장관 통역으로 얼굴을 내비치는 유명인사가 됐다. 승필은 과외시장에 뛰어든다. 하지만 일감을 얻기 위해 학력을 속이고 없는 경력을 만들어 내야했다. 그리고 끝내 들통이 난다. 삼성동이 허허벌판이던 시절, 그곳 주민이었으나 개발이 이뤄질 때마다 변두리로 밀려난 승필의 가족. 신분상승을 꿈꿨던 승필은 계층사다리에서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사회 중심의 거대한 집단만 살아남지요. 경계에 선 사람들은 한발 짝만 잘못 떼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 아닌가요.”
그런 집단에 들어가지 못하면 잘 살수 없는 사회이므로, 그런 불안감 때문에 사교육에 목매다는 것 이라는 작가는 “사교육 문제는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승자독식의 사회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사진=최종학 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인터뷰] 장편 ‘잠실동 사람들’ 쓴 정아은씨
입력 2015-02-13 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