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무차별 종북몰이’가 禍 불렀다

입력 2015-02-12 02:18
검찰 특별수사팀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1심 첫 공판에서 원세훈(64) 전 국정원장의 혐의를 ‘신종 매카시즘’이라고 지칭했다. 정부·여당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도 국정원이 무차별적으로 ‘종북 딱지’를 붙였다는 취지였다. 종북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이 진행된 국정원의 사이버활동은 결국 항소심에서 선거법 위반 유죄라는 ‘부메랑’이 됐다.

원 전 원장은 2009년 2월 취임 직후부터 심리전단 활동 목적을 ‘종북좌파 척결’로 정했다. 2011∼2012년 전체 부서장 회의에서 “종북좌파가 점령한 인터넷을 청소해야 한다” “북한이 대선을 대비해 종북좌파 입지를 넓히려 한다”고 발언했다. 민병주 전 국정원 3차장은 “종북좌파가 진보정권을 세우려는 시도를 저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종북좌파’의 정의와 범위는 국정원도 명확히 내놓지 못했다. 국정원은 2012년 10월 ‘NLL(서해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논란과 관련해 민주당과 문재인 대선후보를 종북세력으로 지목했다. 민 전 차장은 2013년 9월 1심 공판 당시 재판장이 “도대체 종북의 기준이 뭐냐”고 묻자 답하지 못했다. 1심 재판부는 이런 활동을 결국 “명백한 정치 관여 행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한발 더 나아가 심리전단 활동이 선거법 위반에도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종북 척결” 지시로 국정원 직원들이 혼란을 느꼈던 점에 주목했다. 심리전단 직원들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이슈 및 논지가 정치 중립 의무와 배치돼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너무 센 것 아니냐. 신중하게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선거 개입 위험성을 인식한 건 사실이다”라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은 특정 후보를 북한과 위법한 관계에 있는지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계속 비판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정부 때의 심리전단 활동이 과거와 질적·양적으로 달랐던 점도 인정됐다. 원 전 원장은 ‘심리전단 활동은 노무현정부 때부터 계속됐던 방첩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원 전 원장 취임 이후 심리전단은 민간인 불법 사찰, 내곡동 사저부지 의혹 등의 문제에서도 ‘대통령 옹호’에 나섰다. 한 국정원 직원은 2012년 6월 검찰이 민간인 불법 사찰 재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과거 정부와 달리 반역세력 사찰하는 건데 무슨 문제냐”고 트위터에 게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정원장으로서 국가에 헌신한 바가 있으리라 짐작하지만, 이 사건의 잘못이 가진 엄중함에 비례하는 책임을 피할 순 없다”고 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